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정리한 이야기다.* 짧다. 그대로 옮겨 썼다.
인류는 세 차례에 걸쳐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었다.
첫 번째 사건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한 일이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기는커녕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태양 자체는 더 거대한 어떤 체계의 주변에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사건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들고 나온 일이다. 그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넘어서는 존재이기는커녕 그저 다른 동물들에게서 나온 하나의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사건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선언이다.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하고, 철학의 체계를 세우거나 정치 제도를 만들면서, 그 모든 행위가 자아를 초월하는 고상한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겠다면서, 인간이 오늘날까지 이룩한 문명과 문화는 인류를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크나큰 걱정거리를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해버릴 사람이 나타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문명이라고 해봤자 이제 인류는 그 문명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미증유의 시기에 들어섰으며, 문화라고 해봤자 강대국의 이른바 '지도자'라는 인간이 으스대는 꼴을 보면 좀 멍청해 보이는 어느 후진국 지도자나 하나도 다를 바 없고, 그 모습은 흡사 원시인 무리의 우두머리를 연상케 할 뿐이라고 간결하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에게 그 '정리'를 좀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녀는, 그녀가 쓴 《노년》이란 762쪽의 방대한 책에서 결론은 '노인이 괄시를 받지 않으려면 하던 일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함으로써 나 같은 노인을 썰렁하게 해 놓았지만 '으스대는 지도자들이 원시인 우두머리 같다'는 결론을 제시하기 위해 일단 지구상의 으스대는 온갖 것들을 낱낱이 고발하여 속이라도 시원하게 해 줄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보부아르가 이미 저세상으로 갔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장수(長壽)가 최상의 복수"라는 스페인 속담을 따르는 것이다. 녀석들도 언젠가는 고꾸라질 테니까 오래 살아서 그 꼴을 보는 것이다. 답설재 같은 노인보다 그 녀석들이 아무래도 더 오래 살 것 같다고? 천만에! 그런 걸 가지고 '두고 봐야 알 일'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면 그럼 후배들에게 맡겨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면 된다. 올리버 색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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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붙인 본래 제목은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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