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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개구리 소리에 대한 생각

by 답설재 2024. 4. 29.

 

개구리마을

 

 

이 동네 개구리 소리는 유별난 데가 있다.

실내에서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이웃 사람들 이야기 소리처럼 도란도란 들려오는데 문을 열면 돌연 어느 길잡이가 "야! 저 노인 문 열었다!" 하고 외친 것처럼 온 동네 개구리 소리가 일제히 이쪽을 향해 범람해 온다. 이건 완전... 전 동네 개구리란 개구리는 모두 들고일어나서 노래하는 게 분명하다.

 

내가 초등학교 교장일 때, 우리 학교 합창단 아이들이 생각난다.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겠지 하고 강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일제히 '교장이다!' 하고 자세를 바꾸었다. 노래도 안무도 지휘를 더 열정적으로 수용한다.

 

그 개구리 소리가 절대로 일정하진 않다는 걸 이번에 알아냈다.

밤이 이슥하거나 말거나 지치지 않은 척, 배 고픈 줄도 모르고 '우리도 한 철'이라며 계속 노래하겠지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개구리들은 마침 그때가 되었다는 듯 분위기를 바꾸어 이제 제2악장을 연주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 그래? 그럼 더 들어볼게, 할 수밖에 없다.

 

개구리 소리를 들어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이하고 우스운 일이지만 그 동네에는 개구리가 없다니 어떻게 하겠는가. 장마가 지면 개구리들은 아파트 정원까지도 방문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구리가 뭐 하려고 아파트까지 찾아가겠나.

아파트 방문단을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구리 동네의 대표와 아파트 동네 대표가 협약을 맺어서 노래 잘하는 개구리를 차출하면 되겠지? 귀찮다고 막무가내로 데리고 가면 안 된다. 인질(人質)처럼 와질(䵷質)을 하느냐고 민원이 제기될 것이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겉으로는 민원도 두렵지 않다는 듯했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단 누가 좀 보자고 하면 두려운 건 말할 것도 없다. 한번은 소장으로 예편되었다는 분이 학교 운동장 건너편에 산다며 점심 초대를 했는데 우리 학교에 다니는 손주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거 분명 귀찮게 되었구나 싶어서 찾아갔더니 방송 소리만 들어도 학교가 재미있다며 스테이크를 내놓았는데 나는 스테이크는 레스토랑에서 만들어 파는 것이고 호텔에서는 거기에도 레스토랑이 있으니까 특별히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허락된 음식인 줄 알았기 때문에 민원이고 뭐고 '가정집에서 이래도 되나?' 그 생각만 하며 소장의 얘기는 심각하게 듣지도 못했다. 민원은 사람을 우습게 만들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은 여기 빨리 학교를 세우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절대로 세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민원이다.

 

개구리 민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개구리 합창단 파견은 미담(美談)이 되기도 하겠지만 "왜 우리를 맘대로 파견하냐? 이건 확실히 와질이다!"라며 항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알 수는 없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아파트에도 개구리 소리가 들리게 하라!"는 사람이 왜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면 애초에 개구리가 없어진 이유를 분석하게 될 것이고 그 분석에 따라 분노하는 사람들이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살아 있더라도 나는 일단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이렇게 저녁 내내 개구리 합창이 들리는데 사람은 나 혼자라니, 나 혼자 저 합창을 내 마음대로 다 듣고 있다니, 이것도 사실은 말이 되질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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