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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실리콘 코킹 기사들

by 답설재 2024. 5. 7.

 

 

 

 

보름 전에 통화한 코킹 업체 사장은 분명히 나이 지긋한 사람이었는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젊은 기사 두 명이었다. 일이야 기사들이 한다 쳐도 사장이 있어야 제대로 될 것 아닌가 싶었다.

"사장님은요?"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두 젊은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들인데요, 아버지는 나이가 좀 많아서 (어쩌고 저쩌고)... 저희가 일 끝내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그 해명이 공손하고 친절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아파트 뒷마당에서 올려다보며 어디쯤이 물이 새는 창문틀인지, 그런 곳이 어디 어디인지 가늠해 보고 업체 측에서 도착하면 깔끔하게 설명해 줄 작정이었고 그러면 그들은 "늙은이치고는 섬세하네" 할 것까지 예상해 두었는데 ('이런!') 그들은 실내로 들어오더니 물 새는 곳을 묻고는 창문을 열고 뭔가를 붙여두며 이렇게 안에서 표시해 놓고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가 오면 창문틀 아래쪽이 젖는다고 했는데 그들은 창문틀 전체를 손봐야 하는 이유를 포함해서 어떤 작업을 몇 시간쯤 진행하는지 등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설명해 주었고 내가 괜한 질문, 쓸데없는 질문을 해도 얼굴에 미소를 띤 그대로 일일이 다 응대하며 궁금증을 모두 해소해 주었다.

그동안 일쑤 노인이라고 홀대하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그런 꼴만 보다가 물을 만난 꼴이어서 면담이 끝나고 그들이 옥상으로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는 나도 좀 따라 올라가겠다는 듯했는지 옥상은 위험하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마침내 나에게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 나는 건물 뒤편에서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 일하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마침내 일을 끝낸 그들이 줄을 타고 지상으로 주르륵 내려왔을 때 남은 일정이 있어서 철수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또 웃으며 그러시라고, 다만 마침 주말부터 2,3일간 비가 내린다고 하니까 또 물이 새는지 살펴보고 일단 업체에 알려주시고, 하자가 있으면 이번에는 위층 창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이 설명을 하며 그들은 위층 창틀 틈새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현장에 나와서 살펴보고 말씀드리거든 관리실에 이야기하셔서 위층 창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그 설명도 마음에 들었다. 의구심 같은 건 남지 않았고, 위험한 작업을 한데 대해 감사하다고 사장님으로부터 경비는 25만 원 정도면 되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실제로 작업한 결과에 따라 혹 경비가 더 필요한 건 아닌지 물으며 그 순간 내가 먼저 이렇게 물은 걸 집 안에 있는 아내가 알면 나는 분명 한 마디 듣겠구나 싶었지만("당신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떻게 그 모양이냐?") 이미 이 입을 통과한 발설이니 난들 어떻게 하랴 싶었는데 사장의 아들(팀장)이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저희는 아버지가 이미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서는 본래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사흘째 비가 내리고 있고 다행히 창틀 주변에 물기가 비치지는 않고 있다.

나는 그들이 로프에 매달려 일하는 모습, 그들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다.

로프 하나에 목숨을 걸고 매달려 일하는 사람들은 까칠할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성격이나 태도가 좀 아닌 젊은이들만 만났던 것일까? 그들은 한없이 순하고 성실한 데다가 이 허접한 노인에게 최대한의 존경을 보여주었다. 그 업체의 사시(社是)가 이런 것일까?

"고객 감동! 줄에만 의존하지 말고 태도로도 보여주자!"

아, 사장의 그 아들은 내게 그 줄이 플라스틱 재료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도 해주었고 옥상에 설치된 시설물에 그 로프를 매고 내려오는 것인데, 한 번만 매면 되는 것이지만 두 번을 매고, 잘 매었는지 거듭 확인하니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어디 다른 곳에서 누수 현상이 발견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당장 그들에게 연락해서 또 수리해 달라고 할 텐데... 그러면 그들은 또 달려와서 시원하게 처리해 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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