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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렇게 사랑해 놓고 왜 헤어질까?

by 답설재 2024. 1. 25.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나는 아내에게 매번, 무조건 미안해진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해 주었을까?......'

그들이 부럽고 '저 커플은 그동안 어려웠으니까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그들이 부러운 그만큼 아내에게 더욱더 미안해하곤 한다.

우리의 처지가 민망해서 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있기가 난처할 때도 있다.

 

그런 커플을 '선남선녀(善男善女)'라고 하겠지?

아닌가?

글자 뜻 그대로 단순하게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선 같은 '선남선녀(仙男仙女)'인가 싶어 하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善男善女'라는 걸 확인했다.

글자로는 그렇지도 그 의미는 두 가지 단어의 어디쯤이겠지?

 

안타까운 건 '선남선녀(仙男仙女, 善男善女 )'로 여겼던 커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결별하거나 그중 한 명이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어서 그 관계가 깨어져버리는 경우이다.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면이어서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헤어진 사정을 보면 '선남선녀'가 아닌 것 같았다.

'별 수 없는 사람들인데 내가 속았나?'

 

 

Q :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타인들로부터 음미될 수 있을까?

 

A : 완전한 음미? 대개는 15분 정도로 짧다. 프루스트의 작중 화자는 어린 시절에 아름답고 쾌활한 질베르트 ─ 그는 샹젤리제에서 노는 그녀를 만났다 ─ 와 사귀기를 열망했다. 마침내 그의 소원이 성취된다. 질베르트는 그의 친구가 되었으며 그를 자기 집에 정기적으로 초대해서 차를 마셨다. 거기서 그녀는 그에게 케이크를 잘라주었고, 그에게 부족한 것은 없는지 보살펴주었고, 그를 대단한 애정으로 대했다.

그는 행복했지만, 너무나 금세, 자신이 마땅히 행복해야 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질베르트의 집에 가서 차를 마신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마치 흐릿하면서도 공상적인 꿈과도 비슷했는데, 막상 그녀의 집 거실에서 15분 동안 차를 마시고 나자, 이제는 그가 그녀를 알기 전의 시간, 즉 그녀가 그에게 케이크를 잘라주고, 애정을 품고 그를 대하기 이전의 시간이 점차 공상적이면서도 흐릿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는 결과는 지금 그가 누리는 호의에 대한 일종의 망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호의에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이제 질베르트가 없었던 삶에 관한 그의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고, 거기서 맛보아야 할 것에 관한 증거도 이와 함께 희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질베르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 그녀가 대접하는 차의 호사스러움, 그녀가 보이는 따뜻한 태도는 결국 그의 삶에서 너무나도 친숙한 일부분이 될 것이며, 나무나 구름이나 전화처럼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요소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듯이, 결국에는 그것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도 역시 자극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간과의 이유는, 프루스트의 개념에서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작중화자 역시 습관의 창조물이며, 따라서 항상 친숙한 것을 경멸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바탕으로 구성한 문답 형식의 글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15분의 '법칙'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음미'의 시간이란 본래 그렇게 짧은 것이니 그렇게 알고 쉽게 헤어지거나 하지 말고 무던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가?

행복은 어느 쪽에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일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

*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중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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