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
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
현미정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2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를 '일반인'이 미학적으로 바라본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일반인'이 아니었고, 건축에 대해 당시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을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생의 등불 The Lamp of Sacrifice
진실의 등불 The Lamp of Truth
힘의 등불 The Lamp of Power
아름다움의 등불 The Lamp of Beauty
생명의 등불 The Lamp of Life
기억의 등불 The Lamp of Memory
복종의 등불 The Lamp of Obedience
철저한 윤리관, 기독교적 윤리관에 바탕을 둔 내용이었다.
물론 내용 중에는 억척이라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나로서는 명징하게 설명할 만한 힘이 없으므로 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을 뿐이다.
요약하는 건 무의미할 것 같은 내용들이어서 문장 몇 개를 옮겨놓고 나중에 보면 기억나게 하고 싶었다.
전해져 오듯이 ─ 이는 진리이기 때문에 항상 말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애를 베풀고, 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그의 이름이 높아지도록 덕을 행하는 것이 신전에 물질을 바치는 것보다 더 고귀한 헌납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다른 종류와 방법의 헌납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사람들은 기도할 장소와 신의 말씀을 들을 사명을 필요로 하는가? 그렇다면 기둥을 매끈하게 갈고 교단을 세공할 시간은 없다. 우선 벽과 지붕만이라도 충분히 마련하도록 하자. 사람들은 집집마다 가르침을 필요로 하고, 날마다 빵을 필요로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이들은 목사나 신부지 건축가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되기를 주장하고 간청한다. (...)
─「희생의 등불」 7절에서.
(...) 건축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더 큰 돌을 놓고 더 단단한 리벳을 치는 일이 적어도 우리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른 힘의 근원을 보유하고 있다. 무쇠 같은 해안절벽과 푸른 언덕이 주는 표상이다. 그 절벽과 언덕의 힘은 은자의 정신만큼 순수하고, 그 못지않게 고귀한 힘이다. 알프스의 소나무 숲을 수도원의 불빛으로 하얗게 밝히고, 노르만 바다의 거친 바위 조각을 정연한 첨탑으로 올리는 정신이다. 바로 그 정신이 엘리야의 호렙산 동굴의 깊이와 어둠을 신전의 문에 담았다. 그 정신이 해변과 언덕에서 홀로 뒹구는 돌들을 모아 대중의 도시에 신전이라는 잿빛 절벽을 세우고, 하늘을 항해하는 새들과 고요한 대기 가운데로 솟게 했다.
─「힘의 등불」마지막 부분.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의 선과 색은 모두 기껏해야 신이 날마다 만드는 작품의 빛바랜 이미지 정도이며, 신이 전나무와 소나무를 심고 기뻐했던 그곳에서 창조의 별빛을 약간 가로챈 정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피렌체의 성벽 안에서가 아니라 백합이 피는 저 들판에서 그 아이는 누가 방어와 경계의 탑 위에 저 아름다움의 종석宗石을 올려야 할지를 배웠다. 그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라. 이탈리아의 심장을 채웠던 그의 거룩한 사상을 생각하라. (...)
─「아름다움의 등불」마지막 절(43)에서.
바벨탑의 건설자들은 이 세상에 대한 야망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인간의 망각을 거부하는 강한 정복자는 오로지 둘 뿐이기 때문이다. 시와 건축. 건축은 어떤 면에서 시를 포함하며, 현실적으로 더 강력하다. 건축은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뿐 아니라 그들의 생애 동안 그들의 손이 다루고 그들의 힘이 만든 것, 그들의 눈이 포착한 것을 잘 간직하기 때문이다. (...) 그와 관련된 두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는 오늘날의 건축이 역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나간 시대의 건축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서 보존하는 것이다.
─「기억의 등불」2절에서.
나는 앞서 한두 번 이 원리를 거론하였다. 겸손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머지들과 비교해 최고의 품격을 갖춘 것이기에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뜻하는 이 원리는 정치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삶이 행복해지기 위한, 믿음이 수락되기 위한, 창조가 지속되기 위한 조건이다 ─ 복종.
(...)
아포리즘 32 자유, 그런 것은 없다.
─「복종의 등불」1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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