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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by 답설재 2024. 1. 11.

 

 

 

 

어젯밤에는 시청으로부터 '의외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추위나 눈에 관한 문자는 정부부처들, 서울시청, 이곳 도청, 시청 등에서 중복해서 자주 왔지만 안개 주의 문자는 처음이었다. 저녁 9시부터 내일(그러니까 오늘) 아침까지 안개가 심해 가시거리가 짧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는 오늘 아침에 한 번 더 왔다.

 

 

 

 

 

 

우리 동네는 걸핏하면 맞은편 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온 안개가 무슨 거대한 짐승 모양으로 움직이며 큰길을 가로질러 서서히 이웃동네를 잡아먹는 것처럼 옮겨가곤 한다.

그게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좀 미안하기도 했다.

 

 

 

 

 

안개 주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이 시를 떠올렸다.

안개가 심하거나 말거나 이젠 밤거리에 나갈 일이 없어서일까?

오래전 D시에 있을 때는 안개가 자주 끼었고 그럴 때마다 볼일 없이도 거리로 나가곤 했었다. 안개 낀 그 거리에서 들려오는 정훈희의 '밤안개'를 듣는 것도 좋고, 누군가가 그 안개를 뚫고 우연을 가장하여 나를 찾을 것 같기도 했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옛사랑은 분명 '옛사랑'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은 나처럼 늙었을 그 옛사랑은 아닌 '옛사랑'이다.

안개가 심하게 끼어도 밖에 나갈 일조차 없다는 사실이 참 어처구니없는가, 아니면 한심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