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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황인숙 「이제는 자유?」

by 답설재 2024. 1. 8.

 

 

 

 

이제는 자유?

 

 

수화기에서 솔솔

찬바람이 나오네.

점점 차거워지네.

서리가 끼네.

꼬들꼬들 얼어가네.

줄이 비비 꼬이네

툭, 툭, 끊어지네.

아, 이제 전화기에서

뚝 떨어져 자유로운 수화기.

금선이 삐죽 달린 그걸 두고

그녀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네.

전화기에서

천 리 만 리 떨어진 곳도

갈 수 있다네.

 

―황인숙(1958~ )

   

 

산골 집에 갑자기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인다. 눈 내리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묘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눈이 만들어주는 자유. 두절(杜絶)이 만들어주는 자유. 그러나 이내 그 자유의 훼방꾼, 휴대폰이 울린다.

이 귀엽고 발랄하고 탱글탱글한 언어의 스프링을 얻어 타본다. '수화기에서 솔솔 찬바람이 나온다'면 이제 전화 걸어오는 이가 확연히 줄거나 아예 없어진다는 뜻일 게다. 마침내 '서리가 끼'고 '꼬들꼬들 얼어'간다. 전화 걸어오는 이가 없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모든 관계의 단절이 아닌가.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녀'는 누구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금선이 삐죽 달린 수화기'를 보면 알 수 있다(실은 금선이 아니라 구리선이다!). 전화기에서 수화기를 잡아 뜯어낸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전화기가 '그녀'의 삶을 감시하고 감금하고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기를 부숴버렸으니 이제 그녀는 자유다. 하지만 다시 전화기는 성능을 바꿔서 그녀의 '천 리 만 리'를 따라잡았다! 이 시는 22년 전(1990년)에 쓰였다. 그녀의 새로운 자유가 궁금하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그새 11년이나 지난, 2012년 12월 4일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봤다.

그때 잠깐 '나도 저걸 뽑아버릴까?' 하다가 치기어린 짓이고 일단 공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후 그 전화는 돈 모으는 데는 극악스러운 종교 단체와 가족 말고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거의 울리지 않는 적적한 신세가 되었지만 매월 기본요금은 변함없이 부과되는 애매한 존재가 되었다.

 

꼬들꼬들 얼어가고, 비비 꼬이고 툭, 툭, 끊어지고...

그렇게 써 내려갔는데도 이 시는 어떻게 아름다워졌을까?

 

황인숙 시인은 여전할까?

눈이 내리고 이렇게 추워도 밤 늦도록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닐까?

틈틈이 쓴 에세이가『현대문학』에 연재될 때는 좋았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일방적이지만 마치) 이웃처럼 느껴졌었는데... 그 시인이 읽었다는 책을 반가운 느낌으로 읽기도 했는데...

 

그나저나 이제 또 어떤 자유를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