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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베르톨트 브레히트 「민주적인 판사」

by 답설재 2023. 12. 21.

 

 

 

민주적인 판사

 

 

 

미합중국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로스앤젤레스 판사 앞에

이탈리아 식당 주인도 왔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새 언어를 몰라 시험 과정에서

보칙(補則) 제8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겨우 대답했다.

시민권 신청자에게는 국어에 대한 지식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의 신청은 각하되었다. 3개월 뒤

더 공부해서 다시 도전했으나

새 언어를 모르는 걸림돌은 여전했다.

이번에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이 주어졌는데, (큰 소리로 상냥하게 나온) 그의 대답은

1492년이었다. 다시 각하되어

세 번째로 다시 왔을 때,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느냐는

질문에 그는

또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가 새 언어를

배울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회해 보니

고된 노동으로 힘겹게 살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가 네 번째로 나타났을 때 판사는 그에게

아메리카가 언제 발견되었느냐고 물었다. 비로소,

1492년이라는 그의 정확한 대답을 근거로

그는 마침내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3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집 《서푼짜리 오페라·살아 남은 자의 슬픔》(동서문화사 2014)에 실린 이 시를 읽고 잠시 세상은 따뜻한 곳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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