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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서효인 「교실에서」

by 답설재 2022. 4. 10.

 

 

 

교실에서

 

 

서효인

 

 

심심하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나름의 교육적인 목표가 생길 때에

애들을 곤죽이 되게 때리던 수학 선생이 교실에 들어와

사람 좋게

웃으며

나를 따라

웃으라 했다 좋지 않은 사람이라 어색한 명령이었는데

이해할 만한 것이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날이었다

심심하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어떠한 목표도 없이 웃는

수학 선생이 어색해서 우리도 웃었다

웃으라고 하니 무서워서 웃는 아이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웃는 아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을 것 같아 더 크게 웃는 아이

수학 선생의 교활한 체벌은 하루 금지되는 것일까

우리는 수학 시간을 앞둔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그에 대한 출구 조사를 해보았다

그는 야구를 좋아했다

그는 방정식을 좋아했다

그는 김대중을 좋아했다

그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발언을 상기해보았다

조선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너희 같은 놈들은 사회에 나갈 필요가 없다

똥통이다 머저리다 병신이다 개다

당숙모의 공터가 생각나서 나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는데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수학 시간에 엎드려 낑낑대며

잠을 청했다

그에 대한 토론은 그를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귀결되었다

그를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

평생 기호 2번을 찍은 사람이었겠으나

김대중과 해태를 좋아했겠으나

그는 외우라고 했다

수학은 암기과목이라고 했다

맞는 동안에는 개가 된 것만 같았다

비아동의 아이는 개가 될 찰나도 없었겠지만

조선 놈이 되지도 못하였고

조선은 망한 지가 오래일 텐데

수학의 세계에서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일 뿐이다

우리는 웃음을 그쳤다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숙제 검사가 시작되었다

어제는 숙제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드디어 조선 놈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기뻤다

우리는 해태 야구를 좋아했고

그의 방망이 타작이 시작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별명은 오리 궁둥이

방망이는 사람의 살을 통과하지 않는다

박수 소리가 들린다

살과 살이 맞부딪친다

그에게는 나름의 교육적 목표가 있었고

우리는 그를 죽이고 싶었으나

사람이 좋아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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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1981년 전남 목포 출생. 2006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여수』. 〈김수영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대산무학상〉 수상.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아무에게나 배워야 했던, 아득한 느낌밖에 없었던 세월이 서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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