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되는 춤으로부터
이제니
멀리 성당의 첨탑에서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들려온다. 열린 창 너머로 어스름 저녁 빛 새어 들어오고 마룻바닥 위로 어른거리는 빛. 움직이면서 원래의 형상을 벗어나려는 빛이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옛날의 빛이 있다. 사제는 한 그릇의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낮은 자리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화면은 다시 정지된다. 일평생 봉쇄 수도원의 좁고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유폐한 채 기도에만 헌신하는 삶. 너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기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묻는다. 화면은 다시 이어진다. 너는 책상으로 가 앉는다. 맞은편에는 비어 있는 의자. 비어 있음으로 가득한 의자. 책상 위에는 먼 나라에서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는 북반구 소도시의 풍광 사진을 담은 것으로 단단한 얼음을 도려낸 듯한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한때의 죽음과도 같은··· 호숫가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려는 동시에 어딘가에 멈추어 서 있다. 멈추어 있는 채로 움직이고 있는 자전거 바퀴의 빛살이 아득히 눈부시다. 언젠가 너를 눈멀게 했던 호수의 빛.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남몰래 몸을 던지려 했던 깊고 쓸쓸한 물결의. 엽서 곁에는 작고 검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검은 돌···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는 작은 돌. 돌의 표면 위로 무언가 흘러가고··· 돌연 가슴을 두드리는 슬픔이 지나가고··· 돌은 다시 발견된다. 돌은 그제야 제자리에 놓인다. 발견되는 돌 이전에는 발생하는 눈이 있었고.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흘러가는 눈. 너는 엽서의 뒷장을 펼쳐 읽는다. 끝없는 설원의 가장자리로부터 한 사람이 베일 듯 걸어 나온다. 얼음의 꽃으로부터 향기를 간직하려던 사람이여. 닿을 수 없는 국경 너머를 향해 뿔피리를 불던 먼 생의 사람이여. 너는 이미 죽은 스승의 전생의 어머니이다. 몇 겁의 세월을 지나 이름 없는 여인이 낳은 구슬픈 눈을 가진 어린 린포체이다. 순간··· 마룻바닥 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설원의 어린 짐승이 지나가고 너는 네가 가보지 못한 곳의 겪지 못한 형국을 한눈에 다 바라볼 수 있다는 기이한 착각 속에 빠져든 채로··· 맞은편은 여전히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다. 의자에 앉은 너는 끝없는 설원 위를 끝없이 걷는다. 고행이라도 하듯이 앞서 걸어가는 네 자신의 옷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가듯이. 정지된 화면은 다시 재생된다. 기도를 마친 사제는 책상으로 옮겨 앉아 먼 나라의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빛이 먼지를 지우고 있습니다. 밤이 어둠을 돕고 있습니다. 사이··· 푹푹 눈발에 빠지는 발소리가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기에. 너는 의자에 앉은 채로 걸음을 멈춘다. 눈을 들어 옆을 바라보았을 때. 어느새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이 네 곁을 따라 걷고 있었고. 너와 어린 짐승은 각각의 생각에 잠겨 각자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것은 언젠가 전해 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와도 같아서. 네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찰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로서. 너는 작고 검은 돌 위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한 얼굴을 발견한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몸짓들.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의 흐느낌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처럼 먼지의 춤이 발생한다. 춤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있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이전에는 하염없이 덮이는 땅이 있었고. 하염없이 덮이는 땅 이전에는 하염없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몸이 있었고··· 너는 멈추어 있는 채로 걸어가는 그 모든 사물의 표정과 목소리를 너 자신의 얼굴인 듯 읽어 내려간다. 사이··· 먼 나라의 사제는 온몸으로 세계의 울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너는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설원의 모서리에 도착해 있었으므로. 이제 그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함께 걷던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은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었고. 오직 너 혼자만이. 너 자신과 함께.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걷고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설원의 빛 너머로부터. 누군가 멀리서 내내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들려오듯 문득 서럽고 드넓게 울려오는 네 마음속 한 목소리가 있어. 너는 먼 곳의 얼굴 없는 사제를 네 영혼의 친척으로 여기는 것이다.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2021)
이제니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지우고 덧붙이기를 반복하면서 문장을 써나간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기는 언제나 실패하고, 실패의 반복, 다시 반복의 실패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세계를 가로질러 이상하게도 다른 세계의 흔적을 그리워하게 하며 슬픔 속에서 우리를 더욱 먼 곳으로 데려간다. 색채 모자를 쓰고 꿈속의 지점을 향해 머나먼 순례의 길을 영원히 걸어가는 우리들. 이렇게 도달한 세계의 아름다움과 잿빛 슬픔. 흩어짐과 그치지 않는 백색 나선형의 연속이 우리를 이제니 시 속에 붙들어 매는 힘이다. 이 매력적인 세계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박상수)
다소 시간이 지체시키는 반복적 어휘들이 감정적인 노선으로 빠져들게 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것들의 반복 구조를 통해 한편으로는 엄정한 질서를 회복하며 절망적인 도착 지점에 이른다. 그 지점은 바로 감정적인 분위기, 무드Mood의 절망이거나 절연 지점이다. (...)
현상학적 지각의 최소 지점에도 이르지 못한 잡문의 문장이 요란한 오늘의 현실에서, 이제니의 시는 그 갈래를 달리하기 때문에 빛난다. 현실의 잡동사니를 긁어 와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태도나, 형식의 뒤편에 서서 어떤 의미로서의 내용을 가장하는 잡문의 도구적 언어나 일반 커뮤니케이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니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과 같은 이미지로부터의 '찌르기', 찔린 자국, 작은 구멍, 작게 베인 것들을 거느리며, 나만을 찌르는 미미한 것들과 함께 결국 일반적인 내용과 결별한다. 그런 결별 지점이 바로 시적 언어의 생성 지점이다. (..)
사물의 표면을 물질적으로 드러내면서도 현상학적 지각의 장field을 뒤흔드는 시선, 즉 "발생하는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다시 되새기는 눈'을 통해 경험의 시선에서 시적인 언어의 시선으로 이동한다. '기이한 착각,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는 것'을 통한 차원의 변화, 그리고 "빛과 어둠이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춤, 눈, 땅'으로 나아가는, 물러서지 않는 언어의 동력이 눈부시다. (...)
이렇게 의식의 눈을 찌르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를 통해 이제니의 시는 '시적'으로 '시답게' 빛난다. 하지만 빽빽하게 긴 시여서 읽기는 불편하다. 눈 부릅뜨고 읽어야 한다. (박상순)
언어를 음률적으로 쓰는 데 이제니는 독보적이다. 앞말이 뒷말을 밀고 뒷말이 앞말을 받으면서 섞이고 스미고 흘러가는 그의 시는 언어의 운동성, 리듬으로 독자를 시인의 기도, 혹은 주술에 홀리듯 합류시킨다. 시각 이미지에 기울어져 있는 현대시에 익숙한 독자에게 시의 기원이 주술과 음악임을 새삼 깨닫고 만끽하게 하는 시... (황인숙)
《현대문학》 2021년 12월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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