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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픈 사람은 아프더라도 골프 스윙 연습하기

by 답설재 2021. 7. 28.

병원 가는 길... 수없이 다녔는데도 그리울 때가 없는 길. 마지막으로 가게 되면 이 고리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웬만해선 수납창구에 가지 않고 무인수납기를 이용하는데 그날은 새로 다른 과 진료를 예약하려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엔 역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볼 때마다 나의 처지는 잊고 동정을 느낍니다.

 

누가 아플까......

부모?

형제자매?

아내?

자녀?

친정 부모?

장인 장모?

 

그 사람들 중 단 한 명 그 젊은이는 그런 경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초조함, 두려움 혹은 지친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벤치 옆, 벽 쪽 통로에서 젊은이는 골프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돈을 낼 차례를 기다리는 경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럼 누구일까?

부모?

형제자매?

아내?

자녀?

장인 혹은 장모?

 

사내는 사뭇 그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내 시선을 선망으로 느꼈는지 더 멋진 동작을 연출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백스윙 톱'(4단계)으로, 몸통을 크게 돌리면서 두 팔도 위로 힘껏 휘둘렀습니다.

 

지난 주말의 아쉬움이 떠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번 주말에 누비고 다닐 잔디밭의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젊은이에게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사내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나는 왜 이럴까?

사내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의 안타까움을 잊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눈감아주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저 젊은이는 누가 아플까?

부모?

형제자매?

아내?

자녀?

장인 혹은 장모?

 

그 젊은이에게 혐오감을 느낀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가령 축구 얘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할 일이 없어서 병원 수납창구로 놀러 온 것이 아니고 가족 중 누가 아파서 병원에 왔다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골프 스윙 연습은 마땅치 못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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