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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by 답설재 2020. 12. 23.

플루타르코스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10

 

 

 

 

 

 

 

 

그동안의 수다, 쑥스럽고 미안합니다.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또 그러거든 부디 "또 또 또!" 하신 다음 크게 나무라십시오.

 

 

 

다른 정념과 폐해는 대개 위험하거나, 역겹거나,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수다는 이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수다쟁이는 진부한 얘기를 하다 웃음거리가 되고, 반갑잖은 소리를 전하다가 미움을 사는가 하면, 비밀을 지키지 못해 위험에 처한다.(26~27)

 

확실한 것은, 말을 하지 않아 이득이 된 경우는 많아도, 말을 하여 이득이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말할 수 있어도, 일단 말한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다.(29)

 

오뒷세우스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그처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경우 이성이 모든 것을 제어하며, 눈에는 울지 말라고, 혀에는 말하지 말라고, 마음에는 떨거나 짖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30)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고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을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이라면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대가 비밀을 그대에게서 꺼내어 다른 사람 속에 감추려 한다면, 그대 자신보다 남을 더 신뢰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가 그대보다 더 나을 게 없다면 그대는 끝장날 것이며, 그것은 그대 책임이다.(32~33)

 

따라서 희극작가 필립피데스의 대답은 적절하다 하겠는데, 뤼시마코스 왕이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무얼 드릴까요?"라고 정중하게 물었을 때 그는 "무엇이든 주십시오, 전하. 전하의 비밀 외에는"하고 대답했던 것이다.(37)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는 남의 비밀을 가슴에 품지만, 그곳에 간직하지 못하면 마치 뱀에게 물리듯 그 비밀에 물리고 만다고. 동갈치나 독사는 새끼를 낳다가 터져 죽는다는데, 비밀도 입 밖에 나오면 누설자를 파멸케 하기 때문이다.(37)

 

농부는 (...) 모른 체해달라는 왕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농부는 한길까지 왕을 배웅하며 "안녕히 가십시오, 셀레우코스 전하!"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자 왕이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입 맞추려는 듯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일행 중 한 명에게 칼로 농부의 목을 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직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머리가 먼지 속에 나뒹굴었다.(38)

대부분의 수다쟁이는 꼭 그럴 만한 까닭도 없이 신세를 망친다.(39)

 

쓰고 악취가 나는 약을 마신 사람에게는 그런 약을 담았던 잔이 역겹듯이, 나쁜 소식을 듣는 이들은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에게도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낀다.(40) 그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43) 그들은 사랑받으려다가 미움을 받고, 즐거움을 주려다가 짜증을 유발하고, 경탄받으려다가 웃음거리가 되고, 아무 소득 없이 재산을 낭비하고, 친구들은 해롭게 하고 적들은 이롭게 하며, 스스로 신세를 망친다.(44)

 

간결하게 말하는 사람, 적은 말에 많은 의미를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말 많은 떠버리보다 더 경탄받고, 더 사랑받고, 더 현명한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44)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질문이 주어졌을 때, 수다쟁이는 모두가 대답하기를 사양할 때까지 기다리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48)

 

질문받은 사람은 대답을 잘못해도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자청하여 나서서 남의 대답을 가로채는 사람은 옳은 말을 해도 호감을 사지 못한다.(49)

 

수다쟁이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50)

 

질문에는 세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필요한 대답, 공손한 대답, 쓸데없는 대답이 그것이다.(51)

 

수다쟁이는 가장 마음에 들거나 평소 지나치게 심취하는 화제는 조심해야 하며, 그런 화제에서는 밀려오는 말의 물결에 완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이를테면 군인들은 툭하면 전쟁 이야기를 하고, 호메로스가 소개하는 네스토르는 기회가 닿기만 하면 자신의 무훈(武勳)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늘어놓는다.(58)

 

특정 화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특히 조심하고, 되도록 그런 화제는 피해야 한다.(54)

 

사람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자신을 위해 말하거나,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말하거나, 소일거리나 그때그때의 활동에 양념을 쳐 서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말한다.(56)

 

무엇보다도 말한 것을 가끔 후회한 적은 있어도 침묵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시긴 시모니데스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침묵은 목이 마른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불쾌감과 고통을 유발하지도 않는다.(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