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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모스 오즈 《여자를 안다는 것》

by 답설재 2020. 12. 17.

아모스 오즈 《여자를 안다는 것》

최창모 옮김, 열린책들 2009

 

 

 

 

 

 

사립탐정사무소 베테랑 직원(혹은 국가 정보 비밀 요원) 요엘 라비드는 23년간의 직장 생활로 피폐·소진된 자신의 일그러진 생활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방콕으로 출장을 가라는 명령을 일거에 거절해버린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는 도색소설 같았다.

아모스 오즈가 마침내 도색소설을 썼나? 편집자의 의도일까?

 

그가 처음으로 이브리아를 껴안은 것은 1960년 그 과일 나무들 사이에서였으며, 당시 그는 지휘관 훈련의 일부인 목표를 찾아가기 연습 도중에 길을 잃어버린 병사의 처지였고, 그녀는 그보다 두 살 위인 농부의 딸로 관개 수로 꼭지를 잠그기 위하여 어둠 속으로 나왔었다. 둘 모두 깜짝 놀랐고,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어둠 속에서 몇 마디 정도의 말을 교환하자마자 그들의 육체는 갑자기 밀착되어 손으로 애무를 하고, 옷을 입은 채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가슴을 헐떡거리고, 눈먼 한 쌍의 강아지처럼 사로 파고들며, 서로를 할퀴고, 막 시작하기도 전에 거의 끝내고서는 거의 한마디 말도 없이 도망쳐버리고 각자의 길을 갔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녀를 안았던 것 또한 그곳 과일 나무 사이에서였는데 (...) (35~36)

 

도색적이라면 그런 표현은 거의 이것뿐이었다. 더구나 그 '이브리아 루블린은 그의 유일한 연인이었지만,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28)

 

딸과 함께 그의 생활에 냉소를 보이며 경멸하던 아내 이브리아는 어느 비오는 밤에 이웃 남자와 손을 맞잡고 감전사(感電死)한 채 발견되었다.

이제 그는 더("너무!") 외롭다.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끝없이 불안하다.

 

기적이 일어나 그 고통 받고 있는 육식 동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된다 할지라도, 눈이 없는 자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183)

 

그가 자신의 차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의 앞쪽을 길 쪽으로 향하게 하여, 빨리 떠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놓으면서, 불이 꺼진 차고에다 다시 주차시킨 것은 2시가 약간 지나서였다.(184)

 

제목이 "여자를 안다는 것"이어서 요엘이 고뇌와 번민 속에서 여자를 알아가는 과정에 집중해서 읽었다. 죽은 아내, 딸, 어머니, 장모, 이웃집 여인......

그렇지만 우리가 누구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이웃집 여자가 육체적 만족을 위해 그를 기다릴 뿐 단 한 사람도 그를 마음으로 수용해주지 않고 그가 알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은 아무도 풀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을 부정하지 않았다.

여자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일까? 한순간 한순간 어렵게 일상을 이어가며 그는 자신을 복구해간다.

 

여자를 안다는 것 = 세상을 안다는 것, 여자를 안다는 것 = 나를 안다는 것?

 

이렇게 끝난다.

 

어둠이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흔치 않고 예상치 않은 순간들 중 하나가 다시 일어나기를.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깜박거림. 그 은밀하게 가물거리는 빛이 다가오기를 희망하면서 경계심을 놓치지 말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하는 현존을 표시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기양양함과 겸손 외에도.(261)

 

문장은 시적(詩的)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데는 약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