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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by 답설재 2020. 11. 30.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송무 옮김, 민음사 2013(1판 54쇄)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鄕愁)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 그 친구에게는 한없는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276~277)

 

증권 브로커 스트릭랜드는 돌연 가정을 '탈출'합니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만큼 보살폈으면 됐지 않니? 난 이제 그림을 그리러 파리로 간단다!" 하고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홀연히 떠나버렸고, 파리에서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화가 스트로브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다가 마침내 그의 아내 블란치까지 차지해버렸습니다.

'탈출'이나 '가로채기'나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일 것 같지 않습니까?

무자비한(?) 스트릭랜드는 관능밖에 모른다며 블란치까지 배반해버렸고 그녀는 자살했습니다.

 

이곳저곳을 거쳐 스트릭랜드가 정착한 곳은 머나먼 섬 타히티였고, 그곳에서 그는 낙원의 발견에 이어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독한 병마도 그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 만난 어린 아내와 함께 살며 마침내 낙원을 그립니다.

 

「(...) 스트릭랜드가 살던 곳에는 뭐랄까요, 에덴 동산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아, 정말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선생께서도 거길 보실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겁니다. (...)」(270)

 

「글쎄요. 아무튼 기이하고 환상적이었어요. 이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의 상상도랄까.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같은 거였어요. 뭐랄까, 인간의 형상, 그러니까 남녀 형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고, 숭엄하고 초연하고 아름답고 잔인한 자연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어요. 그걸 보면 공간의 무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이 그린 나무들은 매일 주변에서 보는 야자수며 반얀이며 홍염화며 아보카도 나무열매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때문에 그 그림을 보고 난 뒤로는 나무들이 영 달리 보이더군요. 마치 거기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슨 영혼이나 신비가 숨어 있는 것처럼요. 색깔들은 눈에 익은 색채들이었습니다. (..)」(296)

 

진리를 찾기 위해서 혹은 미를 구현하기 위해서 가정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미를 찾으려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배반하고, 자살하게 하고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무도한 일들이 용인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호응을 받으며 마침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몸은 이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싶긴 해도 나도 아주 쬐끔 그런 꿈을 갖고 있었던지 소설이 아주 술술 읽혔습니다.

나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