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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렛미인》 2

by 답설재 2020. 9.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렛미인》 2

최세희 옮김, 문학동네 2009

 

 

 

 

 

 

벵캐 에드바츠는 단지 시체를 냉장실로 옮기는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호칸 뱅츠손의 시체를 옮기고 퇴근을 하려는 밤, 이 흉측한 뱀파이어가 부스스 일어나 앉았고, "에에에에에에에……" 하거나 "아아아아아아아!" 하고 부르짖었다면 그는 어떠했겠습니까?

 

수동으로 문을 열고 시체안치실로 들어간 그는 고무장갑을 꼈다.

이게 뭐야?

시트에 덮혀 있던 남자의 몸뚱이가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성기는 발기해 왼쪽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시트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벵케는 숨을 헐떡였고, 담배연기에 손상된 그의 기도에서 꺽꺽 소리가 났다.

남자는 죽지 않았다. 아니, 죽었을 리가 없었다…… 움직였으니 말이다.

(…)

남자의 성한 손이 느실거렸다.

벵케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남자는 뭐라고,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말하려 하고 있었다. 벵케에게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의식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벵케는 들것 바로 옆까지 가서 남자 위로 상체를 수그렸다.

"네, 왜 그러세요?"

별안간 손이 그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더니 머리통을 끌어내렸다. 벵케는 균형을 잃고 남자 위로 엎어졌다. 그의 목을 잡아 아래로, 그 …… 입 구멍 쪽으로 내리누르는 손은 무쇠처럼 막강했다.

벵케는 들것 끝의 금속봉을 잡으려고 했지만, 목이 한쪽으로 꺾여 있는 탓에 남자 목의 습포에서 고작 몇 센티미터 위까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놔, 이런……"

손가락 하나가 그의 귓구멍 속으로 밀고 들어왔고, 귓구멍의 뼈가 우두둑거리며 무지막지하게 쑤시고 들어오는 손가락에 길을 내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발길질을 했고, 정강이가 들것 아래 철봉에 부딪히자 결국 비명을 질렀다.

그의 뺨에 죔쇠처럼 이가 박혔고, 귓구멍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무언가의 가동을 정지시켰고, 가동이 정지되자…… 그도 체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남자가 그의 얼굴을 질겅거릴 때 눈앞에서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던 습포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였다.(64~68)

 

이 불사신처럼 끈질긴 목숨을 이어가며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육하던 뱀파이어 호칸 벵츠손을 저승으로 보낸 것은 엘리였습니다.

호칸은 그 엘리에게 피를 공급해주고 있었으므로 엘리의 삶은 고독하고 굴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끔찍한 따돌림을 당하며 엘리 외에는 마음을 터놓을 만한 대상이 없는 오스카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오스카르를 괴롭혀서 공포와 굴욕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어느 날,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 오스카르에게 몰래 다가온 욘니와 그의 형 임미, 임미의 친구들이 그를 물속에 집어넣어 죽이려고 하자 엘리가 나타납니다.

수영장에 있던 목격자들(아이들)은, 유리창을 뚫고 날아온 천사가 순식간에 욘니와 임미의 목을 따버리고 오스카르 에릭손을 구출해서 돌아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는 엘리가 큰 트렁크를 갖고 열차를 타고 가는 장면입니다.

트렁크에는 아마도 오스카르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세상으로 갔을까요?

굴욕적이지 않고 고독하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이면 좋았을 것입니다.

오스카르와 엘리를 이어주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