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렛미인》 1
최세희 옮김, 문학동네 2009
"(…) 그들은 뜰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을 때 성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엘리는 여자가 깊고 고르게 숨을 내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는 어느덧 잠들어 있었다. 엘리의 무릎에 와 닿는 여자의 숨결이 따스했다. 엘리는 여자의 귀 바로 아래 탄력을 잃은 주름진 살갗 밑에서 팔딱팔딱 뛰는 맥박을 발견했다.
고양이는 잠잠해졌다.
화면에서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가 여자의 목 부위 동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손끝으로 새의 심장 같은 박동이 전해졌다.
엘리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받치고 조심스럽게 여자의 머리를 앞으로 밀어 무릎 위에 오게 했다. 로크포르 치즈에서 풍기는 강렬한 냄새에 다른 냄새들은 고스란히 묻혀버렸다. 엘리는 소파 뒤쪽의 담요를 끌어당겨 치즈 위에 뒤집어씌웠다.
여자는 숨을 쉬면서 희미하게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엘리는 몸을 수그려 여자의 동맥 가까이 코를 들이댔다. 비누, 땀, 노화한 피부의 냄새…… 그리고 아까부터 나던 병원 냄새…… 여자만의 고유한 어떤 체취. 그리고 그 모든 것 바로 아래 있는, 피.
엘리의 코가 목을 스치자 여자는 신음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엘리는 한 손으로 여자의 두 팔과 가슴을 못 움직이게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리고 입을 한껏 벌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여자의 목에 댄 후, 혀로 동맥을 누른 다음 깨물었다. 윗니와 아랫니를 앙다물었다.
여자는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몸을 격렬하게 뒤틀었다. 팔다리를 크게 휘젓고 두 발로 거세게 팔걸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엘리는 여자의 등에 두 무릎이 깔린 꼴이 되었다.
뜯겨진 동맥에서 피가 일정한 주기로 울컥울컥 솟구쳐올라 갈색 가죽소파로 튀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 두 손을 허우적대다 탁자를 덮어 씌웠던 담요를 잡아당겼다. 엘리가 달려들어 여자의 목에 입을 들이밀고 깊이 빨아올리는데 블루치즈 냄새가 콧구멍 속으로 스며들었다. 여자의 비명이 귀를 찔렀고, 엘리는 한 팔을 풀어 손으로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244~245)
전직 국어 교사 호칸 벵츠손은 흉측하고 흉악한 뱀파이어입니다.
그 뱀파이어는 소아 성애자여서 200년을 살았다는데도 열두 살 아름다운 소녀 같은 엘리에게 치열하게 다가갑니다.
엘리도 뱀파이어인데, 초등학교 6학년 오스카르 에릭손이 덜컥 그 엘리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스카르는 동료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당하고 죽도록 두들겨맞지만 엘리에게는 용감하게 다가갑니다.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뱀'자로 시작되기 때문인지 이름만 들어도 끔찍합니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읽으며 간간히 코로나를 잊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 속으로 영영 들어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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