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
김현
눈사람을 둥글게 만드는 법은
누구에게 배워서 아는 게 아니다
수아야
너는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노란 은행잎을
올려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났구나
네가 옳다
이 순간 먼 훗날
부모도 순진무구하여
슬픔의 눈보라에 휩싸이고
너는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두겠지
가지 않은 길
눈물의 초입은 언제나 맑고
빛나
녹아내려 부모를 인도할 거란다
더 깊고 어두운 심금으로
한 송이 연꽃을 피우도록
수아야 부모 알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네게도 슬픔이 커서
기쁨의 부츠 속에서 발을 빼야 할 날이 올 테니까
그건 또 부모에게 얼마나 큰 환희겠느냐
맨발로 눈밭을 걷기로 작정한
자식새끼 앞길에 등불을 들고 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은 어느새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사실
인간은 가벼이 살아간다
가끔 눈송이를 혀 위에 올려놓으면서
까불면서 알 수 없으면서 복받치면서 모르쇠로
수아야
눈이 녹으면 사람들은
다시 눈을 기다린단다 인생은
그뿐
축하해, 너의 세 번째 눈사람
《현대문학》2020년 6월호
김 현 1980년 강원도 철원 출생. 2009년『작가세계』등단. 시집『글로리홀』『입술을 열면』. 〈김준성문학상〉〈신동엽문학상〉수상.
(...)
맨발로 눈밭을 걷기로 작정한
자식새끼 앞길에 등불을 들고 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은 어느새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사실
인간은 가벼이 살아간다
(...)
'맨발로 눈밭을 걷기로 작정한'
'인간은 가벼이 살아간다'
그래!
정말 그래!
그런데도 그런 나를 인정해주질 않는다.
인정해주고 싶지 않겠지?
인정해다오! 제발 인정해다오!
'부모와 자식은 어느새 /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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