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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미선 「닻을 내린 그 후」

by 답설재 2020. 9. 29.

닻을 내린 그 후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찾아뵙지 못하고

세월 넘겨 찾아뵈오니

아버지 풀 속에 누워

씨를 뿌리고 계시더라

 

뫼풀들과 소곤소곤 얘기하시느라

본척만척 하시더라

 

이생의 모든 업 다 풀고

풀 되어

바람하고도 한 몸이 되어

춤추고 계시더라

 

못내 섭섭하여

모퉁이 돌아서서 훌쩍거렸지만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더라

 

소복소복한 뫼풀 울타리 안겨

꽃과 나비도 부르고 계시더라

 

 

 

김미선 시집 《닻을 내린 그 후》 學而思 2016

 

 

 

 

이 시인은 최근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시인의 블로그에 가봤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시간여행

생이 오고 가는 시간 사이에
슬픔 기쁨 행복
누리는 안락함이
비바람 구름 폭풍을 만나면 엎어지거나
자빠지거나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찍힌 상처도
모두 내가 밟고 지나왔거나 지나가는 길
많은 실수와 잘못함으로 절실한 깨달음이 스미고
지나가고 지나치고... 그런 시간은
너에게 또는 나에게로 순환되어 온다.
오욕칠정, 길흉화복, 희노애락
생의 시간 속으로의 순환여행
모두 지나고 보면 짧은 시간이다.

 

 

나라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고 했습니다.

잘 됐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요.

 

다 지나고 나면 그만입니다.

풀 속에 누우면 그만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눕게 되는 엄연한 사실은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