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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행숙 「마지막 여관」

by 답설재 2020. 6. 20.

마지막 여관

 

 

김행숙

 

 

  조금 전에 키를 반납하고 떠나는 손님을 봤는데 분명히, 당신은 그 손님과 짧은 작별 인사까지 나눴는데

 

  당신은 빈방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더 이상 빈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당신은 기껏해야 작은 여관의 문지기일 뿐인데, 세계의 주인장처럼 당신의 말은 몇 겹의 메아리를 두르고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동심원 가운데 서 있으면 나도 나를 쫓아낼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겨울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무꾼 이야기 같은 게 자꾸 생각나고,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까? 왜 그런 이야기만 기억날까? 왜 그런 이야기에 도시빈민 출신의 내가 나오는 것일까?

 

  깊은 산속에서 나는 간신히 여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여관도 쓰러질 것 같고, 나도 쓰러질 것 같지만, 이런 산속에 여관이 있다니,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여관은 귀신의 집이었습니다. 산 사람은 손님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고도 말할 수 있어요. 실로 나는 산 사람이 아니요, 유령 같은 존재올시다.

 

  죽은 사람 흉내 내는 것들은 이제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당신이 치를 떨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두 번 다시 시체 따위 치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잠들면 죽게 돼 있다고 마치 당신은 나의 운명을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잠만 자겠습니다. 나는 시퍼런 입술을 벌렸지만, 내게도 얼음 같은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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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현대문학』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에코의 초상』『1914년』.〈노작문학상〉〈미당문학상〉등 수상.

 

 

 

『현대문학』 2020년 5월호 76~77.

 

 

 

 

 

 

  우습네요. 내가 들어갔던 여관들을 떠올립니다. 의자라든지 복도 같은, 극히 일부분만 기억합니다.

  지금은 어느 여관에 있는지, 어떤 여관을 찾아가고 있는지, 어떤 여관이 기다리고 있는지, 들어갈 만한 여관이 있는지......

  세상이 여관이라면 나는 장차 어디로 가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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