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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신율리 「콜록콜록 사월」

by 답설재 2020. 5. 12.

콜록콜록 사월

 

 

이신율리

 

 

배꽃이 질 때까지 나는, 사월이 하는 일을 보고만 있었다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발이 작은 운동화는 팔지 않았다 참외에서 망고 냄새가 났다 사월이 콜록거렸다

 

푸른 것은 더 푸른 것끼리 속아 넘어가고 흰 것은 흰 것끼리 모였다 배꽃 같은 나이를 뒤적거렸다 달아나지 않으려고 네 칸짜리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하루가 갔다

 

하늘은 내일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배꽃의 잔소리가 4차선 도로까지 따라왔다 노래하나 물고 새가 날아갔다 잃어버린 가사가 둥둥 떠다녔다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지나갔다 초록 티셔츠를 입은 울창한 숲이 아무도 모르게 헛발질을 했다 떫고 신 것들이 툭툭 나이만큼 떨어졌다 열다섯 살에 잠갔던 배꽃이 먼 쪽에서부터 피기 시작했다

 

구름 뒤에서 나는 미끄러지지 않는 숲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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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율리 2019년 제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경기민요 공부.

 

 

[출처]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2020년 5월

 

 

 

 

 

눈물겹다.

세상을 시로써 바라보게 한다.

고단한 세상을 시로써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이곳은, 이 세상은, 시가 꼭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렵고 속상하고…… 시가 있어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은 이 시에 대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구태여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1

이 시를 저녁 내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사월을 콜록거리며 지낸 이야기?

이신율리의 카페 창문이나 이신율리의 선글라스로 본 세상은 재미있고, 아름답기도 하고, 추억처럼 아련하기도 하고, 아픔과 슬픔도 노래처럼 보인다.

나는 그 꿈결을 타고(시인도 꿈속에서는 나처럼 현실을 온통 굴절시켜가며 지내겠지?) 망원경이나 현미경 혹은 요지경 들여다보듯 세상을 본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니!

이 신비로운 일에 대해 미안하고 고맙다.

 

 

 

*덧붙임*

나는 처음에 이 시인의 시 몇 편을 연속으로 보고 놀라웠고, 더 보고 싶었다.

한참을 기다려 이 시를 보게 되었다.

지금부터 또 기다리겠다고 하면 시인이 초조해질까 봐 걱정스럽지만 누가 보면 "걱정도 팔자"라고 하겠지.

시인이 이 글을 볼 리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본다고 해서 초조해질 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정말로 이 말을 하는 것이며 이 시인이 몇 달 후 혹은 그보다 더 걸려서 다시 이런 시를 보여주더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이 말도 주제넘은 것이겠지.

시인 이신율리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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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대로 말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