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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우신 「不二門 ― 건봉사의 항아리를 정리하는 비구니 리플리컨트」

by 답설재 2020. 5. 1.

不二門

―건봉사의 항아리를 정리하는 비구니 리플리컨트

 

                                                          정우신

 

 

선생은 절을 마치고

관으로 돌아가 누웠다

 

향이 끝나갈 때쯤 살냄새가 났다

 

불이 꺼진 적이 없던

가마솥

무엇이 들었는지 모른다

 

삼동내 개들은

장작 연기의 방향에 따라

짖었다

 

산 중턱까지

뻗어나가지 못하는

차가운 울음소리

 

눈을 감으면 몇 가지

안 보이고

몇 가지 더 보였다

 

사람들은 항아리에 새끼를 낳고 찾아가지 않았다

 

나는 미닫이 창을 달고

선생의 나비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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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신 1984년 인천 출생. 201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비금속 소년』

 

 

 

『현대문학』 2020년 4월호 206~207.

 

 

 

 

 

 

누구와 이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이내 응해 줄지……

어느 시인 사진을 보고

가물가물해졌던 사람의 눈빛을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아득하게 잊히다가 하필이면 이런 얘기냐고 하겠지만

다시 만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면 차라리 이런 주제가 나을 것 같았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가정해 본 문답입니다.

고담준론을 가장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습니다.

 

뭐가 이리 스산할까요?

― 그럼 아늑할 줄 알았어요? 시에서처럼 예나 올려요.

누구에게?

― 자신에게라도…….

이 길밖에 없을까요?

― 있겠어요? 있다 해도 다 똑같을걸요? 어마어마한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라도 별 수 없을걸요?

그래도 서글퍼요.

―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 시인을, 36세의 저 시인이 한 말을 봐요.

 

 

눈을 감으면 몇 가지

안 보이고

몇 가지 더 보였다

 

사람들은 항아리에 새끼를 낳고 찾아가지 않았다

 

나는 미닫이 창을 달고

선생의 나비를 기다렸다

 

 

― 시인이라고 더 가지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그에겐 뭔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아직 36세니까 더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왜 그래요? 그렇지 않은 것 같더니 이제 와서 한심해지고 싶어요?

…………

 

그렇게 얘기해 놓고 다시 시간이 흐르겠지요.

눈빛이 닮은 그 시인의 눈빛조차 또 아련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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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 : (1) [불교] 양극단을 떠나 일체법을 평등하게 보는 법문(法門). (2) [불교] 절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에 마지막 문.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상징한다. 원어 불이법문(不二法門) 고려대 사전.

건봉사 :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후략) 출처: https://www.geonbongsa.org/1 [건봉사]
리플리컨트 : 1.(그림 등의) 모사화 2.(일반적으로) 모조품 3.(특히) 원작자에 의한 모사 4.복제품 5.꼭 닮은 것 예문 Another poignant comparison to how similar the dehumanized Human is to the humanized Replicant. 출처 DAUM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