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맑은
가을 일요일,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여학교 교정을 바라보다가
교실 안 여학생 하나가
렌즈 안으로 슬쩍 들어왔다.
다가오는 수능시험을 맞아
빈 교실에 공부를 하러 온 모양.
학생은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책을 읽으며
머리칼을 슬쩍 뒤로 젖히기도 한다.
그러다간 이번엔 일어서서 멀리 창문 밖을 바라다본다.
그렇게 바로 코앞에 있는 듯.
태연히 시간이 흐르고,
세상엔 이제
그녀와 나, 단 둘 뿐이다.
그러게,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다. 벌써, 이십 몇 년
그 여자 지금쯤 어디로 시집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잘 살고는 있는지.
박남원 시인의 블로그 《세상살이》(시집 「캄캄한 지상」문학과경계사 2005 절판)에서.
시인이 나를 아나? 나를 보고 시를 썼나?
말이 안 되지?
누군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도, 나도 그렇고 누구든 그렇고, 아니라면 말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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