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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남원 「그 여자」

by 답설재 2020. 7. 23.

 

 

 

그 여자

 

맑은

가을 일요일,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여학교 교정을 바라보다가

교실 안 여학생 하나가

렌즈 안으로 슬쩍 들어왔다.

다가오는 수능시험을 맞아

빈 교실에 공부를 하러 온 모양.

학생은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책을 읽으며

머리칼을 슬쩍 뒤로 젖히기도 한다.

그러다간 이번엔 일어서서 멀리 창문 밖을 바라다본다.

그렇게 바로 코앞에 있는 듯.

태연히 시간이 흐르고,

세상엔 이제

그녀와 나, 단 둘 뿐이다.

그러게,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다. 벌써, 이십 몇 년

그 여자 지금쯤 어디로 시집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잘 살고는 있는지.

 

 

                         박남원 시인의 블로그 《세상살이》(시집 「캄캄한 지상」문학과경계사 2005 절판)에서.

 

 

 

시인이 나를 아나? 나를 보고 시를 썼나?

말이 안 되지?

 

누군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도, 나도 그렇고 누구든 그렇고, 아니라면 말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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