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황인숙「철 지난 바닷가」

by 답설재 2020. 8. 23.

철 지난 바닷가

 

 

황인숙

 

 

나도 일요일을 사랑했었죠

바캉스를

아주아주 사랑했었죠

당신 나이에는 그랬더랬죠

그런데 이제

휴일이 별나지도

대수롭지도 않아요

이제 조용한 바다가 좋아요

사방에서 날아온 나뭇잎들이

좌충우돌하다 매미 떼를 따라 휩쓸려 갈

태풍 지난 뒤에나 바다에 가보겠어요

일요일들과 바캉스들을 가라앉힌

바닷가를 찰방찰방 거닐어보겠어요

발가락 새로 바닷물과 모래가 들락거리겠죠

하늘에선 햇빛이 들락거렸으면 좋겠어요

흰 구름 뭉게뭉게 피어올랐으면 좋겠어요

구름의 반그림자 속에서

당신과 만날 수도 있겠죠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문학과지성사 2016)

 

 

 

 

 

 

  레진 얘기를 하니 내 슬픈 금니가 떠오른다. 그 옛날에 내 칫솔질을 목격한 친구가 말했었다. "아주 이빨을 폭파시켜라!" 내 칫솔질은 좀 과격한 편이다. 그 결과 마모가 심하다. 특히 앞쪽 윗니가 깊이 파여서 급기야 작년에 레진을 끼웠는데 아직은 무사하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어금니 하나를 금으로 씌운 건 웬일인지 한 해가 안 가서 빠지고 말았다. 그 즉시 치과에 가서 보강해야 했을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월이 지나 그렇잖아도 시원찮던 어금니가 속절없이 삭아버리고 말았다. 간간 화장실 수납장에서 조우하고 '어, 여기 웬 금귀고리가 있지?' 놀라다가 '아아......' 했었지. 망할 나의 아까운 금니. 아니, 어금니! 어금니가 아깝지, 금니가 아깝겠냐. 대체 왜 치과를 안 간 거야?

 

                                                                              황인숙,「몸이란 무엇일까?」(2020.7.《현대문학》연재 에세이)에서 옮김.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닐 때 내가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되는지, 딱히 나쁜 말이 아니어도 당최 누가 말 붙이는 게 싫다. 다 귀찮고 피곤이 가중될 따름이다. 목소리도 듣기 싫다. 내가 무뚝뚝한 얼굴로 대꾸를 안 하니까 일각에서는 무서운 사람으로 소문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건 썩 좋은 일!

 

                                                                              황인숙, 「모두가 낯선 여름」(2020.8. .《현대문학》연재 에세이)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