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
황인숙
나도 일요일을 사랑했었죠
바캉스를
아주아주 사랑했었죠
당신 나이에는 그랬더랬죠
그런데 이제
휴일이 별나지도
대수롭지도 않아요
이제 조용한 바다가 좋아요
사방에서 날아온 나뭇잎들이
좌충우돌하다 매미 떼를 따라 휩쓸려 갈
태풍 지난 뒤에나 바다에 가보겠어요
일요일들과 바캉스들을 가라앉힌
바닷가를 찰방찰방 거닐어보겠어요
발가락 새로 바닷물과 모래가 들락거리겠죠
하늘에선 햇빛이 들락거렸으면 좋겠어요
흰 구름 뭉게뭉게 피어올랐으면 좋겠어요
구름의 반그림자 속에서
당신과 만날 수도 있겠죠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문학과지성사 2016)
레진 얘기를 하니 내 슬픈 금니가 떠오른다. 그 옛날에 내 칫솔질을 목격한 친구가 말했었다. "아주 이빨을 폭파시켜라!" 내 칫솔질은 좀 과격한 편이다. 그 결과 마모가 심하다. 특히 앞쪽 윗니가 깊이 파여서 급기야 작년에 레진을 끼웠는데 아직은 무사하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어금니 하나를 금으로 씌운 건 웬일인지 한 해가 안 가서 빠지고 말았다. 그 즉시 치과에 가서 보강해야 했을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월이 지나 그렇잖아도 시원찮던 어금니가 속절없이 삭아버리고 말았다. 간간 화장실 수납장에서 조우하고 '어, 여기 웬 금귀고리가 있지?' 놀라다가 '아아......' 했었지. 망할 나의 아까운 금니. 아니, 어금니! 어금니가 아깝지, 금니가 아깝겠냐. 대체 왜 치과를 안 간 거야?
황인숙,「몸이란 무엇일까?」(2020.7.《현대문학》연재 에세이)에서 옮김.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닐 때 내가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되는지, 딱히 나쁜 말이 아니어도 당최 누가 말 붙이는 게 싫다. 다 귀찮고 피곤이 가중될 따름이다. 목소리도 듣기 싫다. 내가 무뚝뚝한 얼굴로 대꾸를 안 하니까 일각에서는 무서운 사람으로 소문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건 썩 좋은 일!
황인숙, 「모두가 낯선 여름」(2020.8. .《현대문학》연재 에세이)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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