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논문 잘 쓰는 방법』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6
나도 논물을 쓰고 싶었지.
언젠가는 논물을 한번 써보자 했었지.
누더기가 되어가는데도 마음 한쪽에 푸르름을 간직했던 날들..........
언제까지였나? 부지런히 옮겨쓴 이 파일을 임시보관함에 저장한 시각은 쑥스럽게도 2010-03-28 17:40.......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에코는 현재 블로냐 대학의 교수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부터 현대의 대중문화와 가상현실에 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미학, 기호학, 문학, 에세이, 문화 비평 등의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넘나들며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에코의 저서로는『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전날의 섬』,『바우돌리노』등의 베스트셀러 소설과『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미네르바 성냥갑』,『작은 일기』,『대중의 슈퍼맨』,『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부재하는 구조』,『일반 기호학 논고』,『기호학과 언어철학』,『해석의 한계』,『기호-개념과 역사』,『소설 속의 독자』,『중세의 미와 예술』등이 있다.
연구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말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같은 분야의 다른 학자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작업을 제시해야 한다.(23)
실제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작업을 의미한다. 즉, ⑴ 구체적인 테마를 찾아내는 것, ⑵ 그 테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 ⑶ 그러한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 ⑷ 수집된 자료들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테마를 재검토하는 것, ⑸ 이전의 모든 고찰들에 대해 유기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 ⑹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자기의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도록 해주고, 또한 필요하다면 그 동일한 자료들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테마를 나름대로 다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26)
만약 어느 영국 저자에 대해 무언가 일본어로 쓰인 것이 있다면, 그 연구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읽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혀두는 것이 합당하다.(45)
과학적인 작업의 장점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시간 낭비를 하지 않도록 해준다는 점이다.(53)
학문적 도용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 주어진 실험이 아니면 수집할 수 없는 실험 자료의 활용, 여러분의 작업 이전에는 전혀 옮겨 적은 일이 없는 희귀한 필사본 원고들을 무단으로 옮겨 적는 행위, 출전을 밝히지도 않은 채(왜냐하면 일단 논문이 공개되면 누구든지 그 논문을 인용할 권리가 있으므로) 여러분 이전에는 아무도 수집하지 않았던 통계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이전에 전혀 번역되지 않았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번역된 텍스트들을 다루면서 여러분이 번역한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67)
대개 테마를 수락할 때에는 자기가 출전에 접근할 수 있는 경우이며, 또한 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⑵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⑶ 내가 그것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71)
번역은 출전이 아니다. 번역은 안경이나 의치(義齒)와 같은 보조 기구이며, 나의 능력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제한적으로 얻기 위한 수단이다.
선집(選集)은 출전이 아니다. 그것은 출전의 한 조각이며, 최초의 접근으로는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작가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볼 수 있는가 내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집은 단지 다른 사람이 본 것만을 나에게 보여줄 뿐이다.
다른 저자들에 의한 설명은, 아무리 방대한 인용이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출전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간접적인 출전이다.(75)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 마치 원문을 직접 살펴본 것처럼 간접적인 출전에서 인용하는 일이다.(77)
그와 동일한 문제가 참고 문헌의 인용에도 제기된다. 논문을 빨리 끝내기 위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읽지도 않은 것까지 참고 문헌 안에 넣으려고 하거나, 또는 심지어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에 의거하여 페이지의 각주에서(본문 안에서의 언급은 더욱 나쁘다) 그 저술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77~78)
도서관의 책임자는, 특히 작은 도서관일수록, 다음의 두 가지, 즉 자신의 박식함과 기억력, 그리고 자기 도서관의 풍부함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아주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도서관이 변두리에 있고 또 찾는 사람이 없을수록, 책임자는 그 도서관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감에 괴로워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그런 책임자를 즐겁게 해준다.(81)
다른 데에는 불필요한(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어느 책의 한 페이지에 마치 실수처럼 담긴 생각 하나가 여러분의 연구 목적에 결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페이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후각으로(그리고 약간의 행운과 함께) 찾아내야 한다. 아무도 그것을 은쟁반 위에 담아 여러분에게 가져오지는 않는다.(82)
어쨌든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제도들이 실제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가 그걸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활용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82)
만약 참고 도서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일 경우에는, 침고 문헌 사이의 비교 확인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인용하는 저술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최초의 서열을 세우게 된다. 그 서열은 혹시 여러분의 이후 작업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지만, 당분간은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84)
어떤 테마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아는 것도 없이 지방의 도서관에 가서 세 번의 오후 시간을 보낸 다음에는, 충분히 명백하고 완벽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나는 지방에 살고 있고, 책들도 없고, 어디에서 시작할지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132)
논문을 쓴다는 것은 바로 수많은 책들을 함께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133)
대개 책에 대한 논문은 두 가지 유형의 책들, 즉 언급의 대상이 되는 책들과 언급에 도움을 주는 책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134)
논문도 마찬가지이다. 작업 계획을 세우도록 하라. 이 계획은 잠정적인 차례의 형식을 띨 것이다. 이 차례가 하나의 요약이 되어 거기에다 각 장마다 간략한 개요를 적어 두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그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도 명백히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은 지도교수에게 납득할 만한 계획을 제시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여러분이 이미 명백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 …….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업 계획은 제목, 차례 및 서문을 포함한다. 훌륭한 제목은 이미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계획이다.(138)
최종적인 차례와 서문(타자를 친 최종 논문에 나오는)은 처음의 것과는 다를 것이다. 만약 동일하다면 완성된 모든 작업이 여러분에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아니면 혹시 여러분이 대단한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여러분은 논문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142)
카드에다 문장을 옮겨 적지 않고 단순하게 <16페이지를 볼 것>이라고 써놓아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원고를 작성하는 순간에는 모든 텍스트를 눈앞에 갖고 있어야만 인용문들을 적절히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카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빼앗기지만 결국에는 더 많은 시간을 얻게 된다.(153)
카드 정리는 논문을 기회로 삼아 이루어지는 일종의 투자이며, 만약 우리가 공부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나중에 때로는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154)
하나의 기준을 갖고 밑줄을 그어야 한다. 모든 것에다 밑줄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전혀 밑줄을 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155)
최초의 책읽기에서는 어떤 부분들은 모호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면 위쪽 여백에다 커다랗게 R(rivedere : 다시 볼 것)이라 표시하고 계속 읽어 갈 수 있다.(155)
복사물의 소유는 책읽기를 방해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 그것은 일종의 수집 현기증이며, 정보의 신자본주의다. 복사물에서 자신을 지키도록 하라. 일단 복사를 하자마자 읽고 곧 바로 기록하라. 정말로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전의 복사물을 소유하기(말하자면 읽고 기록하기) 이전에는 새로운 것을 복사하지 말라. 어떤 텍스트를 복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내가 그것을 읽은 것처럼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156)
원칙적으로 어떠한 출전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학문적 겸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자부심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위선적인 정의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거기에다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자부심이건 겸손이건 직접 실행하도록 하라.(171)
어떤 정신분석가가 정신병자에 대해 설명할 때 정신병자들처럼 표현할 수는 없다. ……. 몬탈레는 비평적 논문을 쓸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179)
논문은 여러분이 처음에 제기한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려는 것이지, 여러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180)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관례이다. 중요한 것을 그렇게 말하면 더욱 효과가 클 것이다.(183)
다음과 같이 비인칭적인 표현에 의존할 수도 있다. 즉 <그러므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는 확실해 보인다. 이 시점에서는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라는 추론이 나온다. 이 텍스트를 조사해보면 ……라는 것을 볼 수 있다.>(185)
<인용에 대하여>
분석해야 할 구절이 반 페이지를 넘으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이다.(187)
비평적 문헌을 인용할 때 그 인용문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또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권위 있게 확인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187)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우리 시대의 중심적 현상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 그토록 명백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187)
인용문이 두세 줄을 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을 따옴표 안에 넣어 본문의 몸체 안에 집어 넣을 수도 있다.(192)
상당히 널리 확산된 의견에 의하면, 수많은 주가 있는 논문이나 책들은 박식함을 자랑하는 속물근성의 예이며, 독자의 눈을 흐리게 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201)
최종적인 참고 문헌 목록은 참고한 자료들을 한눈에 살펴보는 데 도움을 주며, 논의된 문헌에 대한 총괄적인 정보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모든 페이지마다 각주에서 원문을 찾아보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이다.(203)
독자는 최종적인 참고 문헌을 참조하여, (Corigliano, 1969: 73)라는 표시는 바로 <Marketing……이라는 책의 73페이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207)
참고 문헌에다 단지 참조한 책들만을 넣어야 하는가, 아니면 정보를 얻은 모든 책들을 넣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 가장 명백한 대답으로서, 논문의 참고 문헌은 단지 참조한 저서들의 목록만을 담고 있어야 하며, 다른 어떤 해결책도 부정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43)
여러분의 참고 문헌이 아무리 빈약하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알파벳 순서로 잘 정리하도록 노력하라.(244)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 교수를 믿어야 하며, 만약 지도 교수가 어떤 사람은 멍청이라고 말했다면 그를 참조하지 말아야 한다.(216)
입을 열기 전에는 겸손하고 신중하도록 하라. 그러나 일단 입을 열었을 때에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라. / X라는 테마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누구도 그 테마에 대해 그토록 명료하고 완벽하게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은, 여러분은 테마의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 가능하다면 아주 쉽고, 가능하다면 범위가 좁은, 극도로 제한된 테마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218)
두 줄 또는 세 줄이 넘는 구절에도 밑줄을 치지 말라. 지나치게 밑줄을 치는 것은, 지나치게 자주 <늑대다 늑대다>라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23~224)
어떠한 경우든 따옴표를 열었을 때에는 언제나 닫도록 하라.(238)
약호들에 대해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U.S.A.로 쓰거나 USA로 쓰거나 상관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USA로 쓴다면, 계속해서 PCI(이탈리아 공산당), RAF(영국 공군), FBI와 같이 써야 한다(239)
<부록에 대하여>
어느 특정한 기록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게 되는 역사 논문에서는, 비록 그 기록이 이미 출판되었더라도, 그 기록을 부록에 실을 수 있다. 어떤 하나의 법률 또는 법률집에 대해 논의하는 법학 논문은 그 법률들을 부록에 실어야 할 것이다.(만약 그것이 현행의 일반적인 법전에 들어 있어 누누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에).(245)
표, 그림, 통계 자료들은, 본문 안에 삽입될 수 있는 간략한 예가 아닌 이상, 부록에 들어가야 한다. / 일반적으로, 본문을 무겁게 하거나 읽기 어렵게 만드는 모든 자료들 및 기록들은 부록 안에 넣는다. 그러나 때로는 계속해서 부록을 참조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 지겨운 것은 없다.(245)
차례는 독자나 저자 자신에게도 역시 필수 불가결한 서비스이다. 무엇보다도 어느 특정한 테마를 신속하게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준다.(247)
영미계의 어떤 책들은 서문 다음에 차례를 넣기도 하며, 종종 서문, 초판의 서문, 재판의 서문 다음에다 두기도 한다. 그건 야만적이다 그건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며, 차라리 책의 한가운데에 두는 것이 나으리라.(247)
다음과 같이 하지는 않는다.
7.
8.
9.
10.
로마 숫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지나치게 섬세한가? 아니다, 그것은 깨끗함이다. 만약 여러분의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다면 여러분은 바로잡을 것이다.(250)
제7장 결론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찰로 결론을 맺고 싶다. 즉, 논문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다는 의미이며, 논문은 마치 돼지와 같아서 버릴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실제적인 연구를 해보지도 않고,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겁을 먹고 있다가,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 수많은 규칙들, 수많은 지침들, 거기서 살아나올 방도가 없으리라…….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함을 기하기 위하여 필자는 완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각자 어떤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언급되는 여러 가지 기법들을 이미 자기 고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필자의 이 책은 아마도 그 모든 기법들을 상기시키고, 여러분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미 흡수한 것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도록 하는 덷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자동차 운전자도 역시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되면, 자신이 단 몇 초 동안에 절대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경이로운 기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든 일은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여러분이 관심 있는 테마를 선택했다면, 또 비록 짧지만 미리 정해진 기간(앞서 우리는 최소한 6개월로 한계를 정했다)(251) 동안 정말로 논문에 몰두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은 논문을 하나의 놀이, 하나의 내기, 하나의 보물찾기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찾기 어려운 텍스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는 스포츠와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며,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오랜 숙고 끝에 그 해결책을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수수께끼 놀이에서와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은 논문을 하나의 도전으로서 체험해야 한다. 도전자는 바로 여러분이다. 여러분은 처음에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제기했다. 그것은 수많은 움직임 안에서 해답을 찾는 일이다. 때로는 논문을 두 사람의 시합으로 체험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저자는 자신의 비밀을 여러분에게 보이려 하지 않고, 여러분은 그를 포위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고, 말했어야 하는데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논문은 외로운 작업이다. 여러분은 모든 조각들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을 제자리에 맞추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스포츠처럼 즐겁게 경기를 한다면, 훌륭한 논문을 작성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의식(儀式)이며 관심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출발점에서 패배한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필자가 서두에서 말했듯이(그건 비합법적인 것이므로 다시 반복하지 말기로 하자), 차라리 논문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베끼고, 여러분 자신의 삶을 망치지 말고, 여러분을 도와주고 읽어줄 사람의 삶을 망치지 말라.
만약 논문을 재미있게 썼다면,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대개 논문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지 논문이 끝날 순간만을 생각한다. 그다음에 올 방학을 꿈꾼다. 그러나 논문이 잘되었을 경우에는 논문이 끝난 다음에 엄청난 연구 의욕이 솟아나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홀히 했던 모든 논점들을 깊이 연구해 보고 싶고,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했지만 억눌렀던 생각들을 뒤쫓아 보고 싶고, 다른 책들을 읽고 또 평론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논문이 여러분에게 지적인 신진대사를 자극했으며, 하나의 긍정적인 경험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그것은 또한「모든 타임스」에서 채플린이 작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나사를 조이듯이, 여러분이 이미 억압적인 연구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면 여러분은 멈추도록 해야 한다.(252)
그러나 일단 멈추고 나면, 여러분이 연구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고 있으며, 논문이 단지 학위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또한 학위가 공무원으로서 승진을 하거나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구를 계속하려는 의도가, 꼭 대학에서 경력을 쌓고, 대학의 자리를 기다리고, 즉각적인 일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을 아니다. 대학에서 자리를 얻지 않고도, 또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연구에 몰두할 수도 있다. 훌륭한 전문 직업인도 역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구에 몰두한다면, 잘 쓴 논문은 전혀 버릴 것이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첫 번째 활용으로서, 여러분은 거기에서 한두 편의 학문적 논문, 혹은 한 권의 책(약간의 수정 작업을 거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분은 인용할 자료를 찾기 위해 논문으로 되돌아가고, 최초 논문의 최종적인 편집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독서 카드들을 다시 활용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바로 논문의 부차적인 부분들이었던 것이 새로운 연구의 시작으로서 여러분에게 새로이 제시되는 것이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의 논문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마치 첫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잊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여러분이 진지하고 엄격한 과학적 연구를 한 맨 첫 번째가 될 것이며, 그것은 결코 간단한 경험이 아니다.(253)
이 신나는 일을 결국 하지 못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나는 이렇게 좋은 일을 돈을 주고 남에게 맡긴 사람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었다.
그는 남이라도 즐겁게 해주었겠지?
쑥스럽다. 에코 몰래 나는 밑줄을 많이도 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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