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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by 답설재 2020. 10. 17.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

 

 

 

 

당신의 대답은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 당신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건 사르트르의 말 아니겠습니까.(24~25)

 

당신은 말하곤 했지요.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또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홀로 되어 밤이고 낮이고 어느 때건 메모를 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펜을 내려놓은 다음에라도 글 쓰는 작업은 계속되며 밥 먹다가도 이야기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갑작스레 그 작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내가 몽상가처럼 오래오래 말이 없으면, 당신은 이따금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당신 머릿속의 생각을 내가 알 수만 있다면….” 하지만 당신 역시 그런 적이 있었으니 내 머릿속 상태를 모를 리 없었지요. 홍수같이 넘쳐흐르다 단단한 결정結晶이 되어 제자리를 찾아가는 단어들, 끊임없이 단련되는 문장의 조각들, 암호나 상징으로 기억 속에 고정시키지 못하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어렴풋한 생각들. 작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글 쓴다는 사실을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당신은 말했지요. “그러니 어서 써요!”(36~37)

 

그 글의 가제는 ‘사회 개조’였습니다. 경제 성장을 계속 추구하면 여덟 가지 측면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수많은 재난이 발생한다고 확언하면서 그 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자크 엘륄(1912~1994, 프랑스의 사상가, 역사학자, 신학자, 사회학자)과 귄터 안더스(1902~1992, 물질문명을 비판한 독일의 사상가, 에세이스트.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사상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즉 산업의 팽창은 사회를 거대한 기계로 바꾸어놓는데, 그 기계는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인간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공간을 제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그 추구 방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거대한 기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서비스가 동시에 전문화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기 요구를 스스로 결정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사람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직업들’에 종속되는 것입니다.(75~76)

 

생태주의란 삶의 양식이 되고 매일의 실천이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문명을 요구하는 것이더군요. 어느새 나는, 평생 무엇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한 한쪽 면만 발달시켰고 인간으로서 무척 빈곤한 존재인 것 같았지요.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차원에서 활짝 피어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 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86)

 

 

네 가지에 대한 내 생각으로 멋진 독후감을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두기만 하고 10년이 지나갔습니다.(2010.3.28)

 

"어느새 나는, 평생 무엇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일들은 언제나 그렇게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