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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by 답설재 2020. 1. 7.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HELL IS A CLOSED DOOR

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9

 

 

 

 

 

 

 

연말에 시인 雪木에게 큰 실례를 한 일이 있어서 그걸 드시고 입 좀 닫아주었으면 싶어서 꿀을 사 보냈는데 한동안 아무 말이 없어서 '통했구나!' 생각하는 사이 느닷없이 날아온 우편물을 펴보았더니 '엇?' 이 시집이 들어 있었습니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

없다.

 

속표지에 적힌 이 시(「지옥은 닫힌 문이다」 부분)부터 읽어보고 나는 다시 雪木을 생각했습니다.

'이 시는 雪木에게는 어떤 부분일까?'

 

 

체증

 

 

도심을 통과하는 하버 고속도로 남부

거기 아주

기막힌 데야.

 

지난 금요일 저녁 거기 앉아 있었어

1단 기어조차 넣지 않은

빨간 미등의 장벽 뒤에서

꼼짝 못 하고

자욱한 배기 가스

잿빛 저녁 하늘

과열된 엔진들.

앞쪽 어디에서

클러치 타는 냄새가

나더군.

차들이

1단에서 중립으로

중립에서 1단으로

오락가락하는

길고 느릿한

고속도로 오르막

어딘가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어.

적어도 여섯 번은 들었을 거야.

세상 돌아가는 꼴이

훤히 보일 만큼.

다른 채널에선

얄팍하고 따분한 음악만 나왔어.

클래식 채널은

잡히지 않았고

잡히면

평범하고 따분한 곡들만

줄창 나왔지.

 

라디오를 껐을 때

머릿속에서 이상한 회오리가 일더니

이마 안쪽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두 귀를 지나 뒤통수에 도달해

이마로 돌아간 다음

다시 뱅뱅 돌더라고.

궁금했어, 이거 혹시

사람이 미치는

증상인가?

 

추월 차선에 서서

차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하는데 문득

차 밖에 있는

내 모습이 보였어

팔짱을 끼고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기대 있다가

주르륵 주저앉아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는

내 모습이.

 

나는 차 안에서 이를 악물었어.

라디오를 다시 틀고

애써 그 회오리를 억누르며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충동을

꾹꾹 누를까?

 

그때 앞 차가

움직였어

30센티, 60센티, 90센티!

 

나는 1단 기어를 넣었어……

줄이 움직인 거야!

그러다 기어를 중립으로 돌렸지만

그래도

이삼 미터는

움직였으니 그게 어디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어

일곱 번째로.

여전히 암울한 뉴스였지만

모두들

그 정도는 참아 넘겼지.

똑같은 운전면허증과

앞 차 좌석 위로

솟은

똑같은 빙충이의 뒤통수를

더 쳐다보다가는

환장할 것

같았거든.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온도계 바늘은

오른쪽으로 기울고

연료 계기판 바늘은

왼쪽으로 기울었지.

우리는 궁금했어.

누구의 클러치가

타는 걸까?

 

맥없이 집으로 기어가는

어쩌면 죽으러 가는

최후의 거대 공룡.

우리가 딱

그 꼴이지

뭐야.

 

 

 

맨 앞에 나온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충격으로 말하면 그 시는 '시작'일뿐이었습니다.

'이런 시가 있구나…… 이런 시인이 있었구나.'

긴장감으로, 속도감으로, 분명히 시집이라고 한 이 책을 소설처럼 읽었습니다.

찰스 부코스키에게는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재미있는 찰스 부코스키.

재미있는 찰스 부코스키 이야기, 찰스 부코스키의 재미있고, 비참하고, 충격적인 이야기.

자주 야성적이고 슬픈 시…….

 

'이건 소설이야! 확실해! 그의 자서전이야!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이 찰스 부코스키 자신이니까.'

 

 

강도

 

 

이렇게 끝나나

난감하다

엉뚱한 뒷골목에서 강도나 당하고.

암울한 낮과 밤의 연속

불친절한 정오의 연속

재수 없는 여자들을

전전하는 처지.  

 

나는

끝났다. 나를 뒤집어

바로 눕히고

포장해

노르망디의 새들이나

산타 모니카 갈매기에게

던져 다오.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더 이상

번식하지

않는다

적막한 울타리 너머로

영감들과 얘기할 뿐.

 

나의 자살은

단일체들과

합체가 되려나? 왜냐하면

전화하다 케루악과 아는 사이냐는

질문을 받았거든.

 

이젠 고속도로에서 추월당해도 그만이다.

주먹다짐은 15년 전 일.

밤에는 세 번이나 일어나 오줌을 눠야 한다.

 

거리에서 섹시한 여자를 보면

귀찮다는 생각부터

든다.

 

나는

끝났다. 고리타분한 인간으로 복귀해

홀로 술을 마시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죽음의 문턱이 코앞이고

호랑이가 꿈자리를 활보한다.

 

입에 문 담배에 막 불이 붙었다.

 

흥미로운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는군.

 

아니, 나는 케루악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보다시피

내 삶도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다 읽어버리고, 그렇게 빨리 읽어 치운 걸 아쉬워하며 또 생각했습니다.

'이 시들의 어느 곳에 설목이 있을까?'

'설목은 이 시인과 어떤 관계일까?'

설목은 "읽을수록 당기는 시 같지 않은 시"라고 했고, "읽으면서 시를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의문에도 빠졌다"고 했습니다.

"시를 이렇게 써도 되나?"

설목은 찰스 부코스키에게 그렇게 물었을까요? 아니면 겉으로는 그렇게 물으면서 자신에게 "나는 그럼 이렇게 시를 써도 되나?" 하고 자문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지만 나는 설목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설목은 처음부터 시인이었으므로, 설목은 시인으로서의 세상,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사실은 처음부터 설목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 자신이 혼란에 빠져서 '설목은 어떤가?'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빠진 혼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현명하면 좋은 것인가? 그러면 만족할 수 있는가? 남들에게 현명하게 보이는 건 좋은 것인가? 이 나이에 현명해지려고 하는 건 좋은 것인가? 남들에게 현명하게 보이려고 하는 건 괜찮은 짓인가?'

예를 들어 현명함에 대한 생각이 그런 것이었으므로 다른 것들도 '물론' 다 그렇습니다.

 

 

'찰스 부코스키.'

'찰스 부코스키를 더 읽을 것.'

'아니, 다른 책들도 더 읽을 것. 아직 멀었으니까.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지. 시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