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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임지은 「대충 천사」

by 답설재 2019. 12. 12.

 


 

 

 

대충 천사

 

 

임지은

 

 

천사가 있다면

자르다 만 핫케이크에 누워 있을 텐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서

나만 안다

 

천사는 대충을 좋아한다

대충 싼 가방을 메고 피크닉 가는 것을

몇 개의 단어로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천사는

모든 것이 대충인 세계로 온 것

좋아해서 그어놓은 밑줄 위에 천사가 누워 있다

 

내가 좀 전에 벗어놓은 추리닝을 입고 있는

천사는 튀어나온 무릎만큼

상심한다

 

인간은 악취에 뿌린 냄새 같아서

향수로도 잘 감춰지지 않고

 

우리는 틀어놓은 음악을 함께 듣고 있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 듣느라

천사가 곁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의 이어폰으로 놀러 온 천사여,

지금 그 기분을 벗지 말아요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달프거나 짜증이 나거나 분통이 터지거나 한 날이 수도 없이 닥쳐옵니다.

 

그런 날에도 조용한 시간이 오면 금세 '이승'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좋은 줄이나 알고 지내야 한다는 걸, 지켜보고 있던 누가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가르쳐주어야 하겠느냐고 따지지도 않고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며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동네』 2019년 9월호에 실렸더라는 시를 『現代文學』 2019년 11월호(310~311)에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