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의 이웃들
정다연
오늘은 언덕 위에 눕혀진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된 기분
다 지켜본 기분
이웃한 인간이 이웃해 있는 다른 인간보다 높게, 더 높게 석상을 세우려다 서롤 죽이고 죽였다는 얘기 석상보다 더 거대하게 시체와 시체로 탑을 쌓았단 얘기 섬 전체가 불탔다는 얘기
이곳은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아
이곳은 더는 새가 날지 않아
태풍이 부드럽게 새 한 마릴 납치해
이끼 낀 석상 위에 산 채로 보내주는 일도 없어
인간이 멸종마저도 멸종시켰기 때문에
또다시 절벽은 절벽이지 둥지가 되진 않아
종려나무는 종려나무가 되기를 멈추었어
씨앗은 씨앗이길 포기했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씨앗이 씨앗이기를 감수하고
종려나무가 종려나무 숲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기까지
오늘은 이목구비가 뻥뻥 뚫린 언덕이 된 기분 이런 언덕들과 헤아릴 수 없이 수만 년 같이, 멀리멀리 흘러운 기분
이끼는 덮기를 포기했지 너무 크고 깊어서
위에서 내려본다면 어떨까
한 치의 찡그림 없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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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1999년 서울 출생. 2015년 『현대문학』 등단.
시가 이렇게 있을 수도 있구나…….
직설적이어서 쉽고 강하게 다가왔다.
시를 무슨 소설처럼, 수필처럼 읽어왔고,
그렇게 읽으며 자주 시인들을 원망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 시간의 길이만큼 억울하다.
하기야 배운 적이 없다. 전혀 없다.
나를 가르치겠다고 한 사람들, 그들도 시를 읽을 줄 몰랐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억울하다.
(『현대문학』 2019년 6월호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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