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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교도소에서」

by 답설재 2019. 5. 9.

 

 

 

교도소에서

 

 

김선태

 

 

재소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러 교도소 삼중 철창문을 들어섰을 때

불현듯 나는 밀림에서 잡혀 온 맹수들이 갇혀 있는 동물원을 떠올렸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왜 억지로 들어야만 하냐는 듯

재소자들이 어슬렁거리며 강의실에 들어와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볼 때

나는 그들 앞에 서 있는 자체가 두렵고 무서워 사지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감시 아래 반쯤 고갤 숙인 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들은 이미 맹수가 아니었다 풀이 죽은 눈망울들이 오히려 애처로웠다

 

애초엔 각본대로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자고

얌전히 길들여져 다시 자유로운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하고 싶었으나

양심에 찔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연 반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만약에 그들이 인간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죄로 끌려온 짐승이라면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판치는 인간 세상이 밀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적이라는 말은 동물적이라는 말보다 과연 아름다운가 묻고 싶었다

 

교도관들의 눈치가 보여 결국 제대로 말도 못한 채 강의를 마친 후 나는

교도소를 나와 바깥이라는 더 큰 감옥으로 들어가는 양 발걸음이 무거웠다

 

 

 

――――――――――――――――――――――――――――――――――――――――

김선태 1960년 전남 강진 출생. 199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간이역』『동백숲에 길을 묻다』『살구꽃이 돌아왔다』『그늘의 깊이』『햇살 택배』 등. 〈애지문학상〉〈영랑시문학상〉〈시작문학상〉〈송수권시문학상〉 등 수상.

 

 

 

이렇게 읽어보았습니다.

 

재소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러 교도소 삼중 철창문을 들어섰을 때 불현듯 나는 밀림에서 잡혀 온 맹수들이 갇혀 있는 동물원을 떠올렸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왜 억지로 들어야만 하냐는 듯 재소자들이 어슬렁거리며 강의실에 들어와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볼 때 나는 그들 앞에 서 있는 자체가 두렵고 무서워 사지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감시 아래 반쯤 고갤 숙인 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들은 이미 맹수가 아니었다 풀이 죽은 눈망울들이 오히려 애처로웠다

애초엔 각본대로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자고 얌전히 길들여져 다시 자유로운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하고 싶었으나 양심에 찔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연 반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만약에 그들이 인간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죄로 끌려온 짐승이라면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판치는 인간 세상이 밀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적이라는 말은 동물적이라는 말보다 과연 아름다운가 묻고 싶었다

교도관들의 눈치가 보여 결국 제대로 말도 못한 채 강의를 마친 후 나는 교도소를 나와 바깥이라는 더 큰 감옥으로 들어가는 양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시다운 시)여서 그렇겠지요?

읽기 좋게 해놓은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현대문학』 2019년 5월호 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