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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나방과 다방」

by 답설재 2019. 7. 1.

 

2019.6.2.

 

                                                               

 

나방과 다방

 

 

김 참

 

 

 지하 다방 내려가는 벽에 나방이 붙어 있다. 연두색 몸통에 파란 날개 달린 나방 옆에 흰 날개에 검은 점 박힌 나방 옆에 검은 날개에 노란 소용돌이무늬 나방. 이토록 기이한 나방들 어두운 벽에 왜 이리 많이 붙어 있나. 자크 에튜의 음악이 흐르는 다방, 테이블과 찻잔에도 알록달록한 나방 그림들. 화려한 나방 구경에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주인이 나방 마니아인지 천장과 벽에도 나방이 잔뜩 붙어 있다. 누가 그린 건지 주인이 기르는 건지 물어 보고 싶은데 다방 문 열고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온다. 다방 입구부터 다방 내부까지 웬 나방이 이렇게 잔뜩 붙어 있는지 그도 잔뜩 궁금한 표정이다. 우리는 각각 담배를 꺼내 서로에게 불을 붙여주고 기이한 나방과 수상한 날씨 이야기를 한다. 중국옷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커다란 재떨이를 놓고 간 뒤 음악은 멈추고 침묵이 흐른다. 시끄러운 환풍기 소리와 우리가 뱉어낸 담배 연기와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를 견디며 벽과 천장에 꼼짝없이 붙어 있는 저 많은 나방들. 오월도 벌써 마지막이다. 이제 곧 여름이 오겠지. 환절기엔 사람이 많이 죽는다는데. 저녁엔 노을도 핏빛으로 번진다는데. 이런저런 생각 하는 동안 중국옷 입은 여인이 차를 들고 온다. 다방을 점령한 이 많은 나방들은 다 뭐냐고 물어보니 여인은 나방이 그려진 명함을 건네준다. 다방 이름이 나방과 다방이에요. 수줍게 웃으며 돌아서는 그녀의 목덜미에 흰 날개에 파란 점 땡땡 박힌 나방이 붙어 있다.

 

 

――――――――――――――――――――――――――――――

김 참  1973년 경남 삼천포 출생. 1995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 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현대시동인상〉〈젊은 시인상〉 수상.

 

 

『현대문학』 2019년 7월호, 76~77.

 

 

 

"지하 다방 내려가는 벽에 나방이 붙어 있다. 연두색 몸통에 파란 날개 달린 나방 옆에 흰 날개에 검은 점 박힌 나방 옆에 검은 날개에 노란 소용돌이무늬 나방. 이토록 기이한 나방들……."

 

뭔가 복잡하고 기이하긴 하네?

그 복잡하고 기이한 구경거리에 팔려 시인의 다방으로 함께 내려가면서도 나는 또 시를 읽으려고 한다. 운율도 찾아보고 어떤 비유를 썼는지도 생각해보고…….

런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이 시인이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이야기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시를 읽는 일에 대해서는 뭘 건지지 못하더라도 스토리라도 건지고 싶어 한다.

 

그렇게 다 읽고 나서 내가 속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시인은 운율이고 뭐고 비유고 뭐고 내가 아는 것들은 감추고 읽고 난 다음 질문 있으면 하라고 한다.

나는 스토리를 챙겼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질문할 것이 없어서 질문은 그만두고 다시 또다시 읽는다.

 

엄청 멋진 시를 보면 이제 다른 시는 없어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시인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시를 들고 나타난다.

평범한 말, 평범한 일,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내가 어렸을 때 하던 혹은 듣던 얘기, 아니면 무료한 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 같은 이야기, 굳이 이야기하면 내가 우스운 사람이 될 것 같은 이야기…….

문득 나도 저런 다방에 몇 번 들어갔었던 것 같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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