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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차이(差異)

by 답설재 2019. 6. 2.












차이(差異)





    1


  간단한 시술을 받으려고 2인용 병실에 있었습니다.

  옆 사람이 먼저 실려 나가는 걸 보며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든가 하는 얘기도 생각났고 소 돼지 같은 짐승이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도 이런 생각으로 동료 짐승을 바라볼까, 잠시 같잖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2


  그로부터 이삼십 분 후,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내 차례가 된 것에 대해 나는 거의 초등학생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가기가 좀 싫다든가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는 의사표현을 할 겨를도 없고, 그런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고, 그저 정해진 바에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암담한 느낌을 가졌던 것입니다.



    3


  나를 가지러 온 청년은 혼자 힘으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겠는가 묻고 수액과 내 손목을 연결한 호스도 있고 해서 좀 비틀거리며 내려가서 균형을 잡자 복도에 가져다 놓은 환자 이송용 침대를 가리키며 거기에 드러눕는 요령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단순한 구조이긴 하지만 그리 불편하지도 않은 그 침대에는 오랜만에 누워보는구나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청년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제법 따스한 시트로 바람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몸을 덮어준 뒤 마지막으로 발을 감싸서 마무리했고, 그렇게 한 즉시 "좀 돌리겠습니다~" 해서 내가 '돌리다니, 무슨 뜻이지?' 생각하는 순간 그는 능숙하게 그 침대의 방향을 돌린 다음 그렇게 실어놓은 나를 엘리베이터로 가지고 갔습니다.



    4


  그 침대 위에 누워서 그렇게 실려가며, 실려가서 대기하며, 치료를 받으며 나는 '생각보다'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많이 생각한다고 좋을 것도 없고, 걱정한다고 될 것도 아닐 것이었습니다.


  다만 '내가 죽으면 조금 더 육중할지는 몰라도 ―그렇겠지요? 이미 아무 의지도 뭣도 없게 된 시체이므로 그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단순한 실수로 굴러 떨어지거나 하면 그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와 거의 유사한 침대에 눕혀지고, 시트 아래 이렇게 누워 있을 것인데 지금은 그 시트가 얼굴까지 덮진 않았구나, 다만 그게 다르구나' 그것 한 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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