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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회화나무

by 답설재 2019. 6. 4.






회화나무










    1


  회화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대단하진 않지만 반가웠습니다. 야단스럽지 않아서 내가 반가워해도 그걸 눈치채고 바라보는 이가 없어서 더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아서 저 아래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21일 토요일, 국립중앙박물관 옆 용산가족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서였습니다.



    2


  2010년 3월, 나는 많이 착잡했습니다.

  어언 41년, 2월 말에 퇴임을 했고, 그 직전에 지병이 드러나 생전 처음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냈었습니다.

  출근이라고 하기에는 서글펐지만 몸이 괜찮다 싶은 날에는 차를 갖고 올림픽도로를 거쳐 어느 공공기관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가는 길에서 무언가 많이도 생각한 것 같은데 되돌아보면 "서글프더라"는 한 마디뿐입니다.

  그 길에서 처음 만난 것이 저 회화나무였습니다.

  "정말인가?" 묻겠지만 처음엔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정말인가?" 묻겠지만 '아카시아 같은데 이상한 아카시아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3


  '아카시아 같은데 이상한 아카시아구나' 하다가 '아무래도 아카시아가 아닌가 보다' 한 그 나무들은 그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심은 것 같은데도 품위를 갖추어 나가는 나무들 같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바라볼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 나도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습니다.

  그 가지가지에 피어나는 잎새들은 포근한 느낌이었고 아늑하였고 아름다웠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 나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지나는 그 도로와 내 인생이 '괜찮다', '괜찮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4


  지금 나는 서리 내린 계절의 풀잎처럼 점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풀이 아니니까 삭아가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고, 불꽃이라면 거의 다 타서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어디 조용한 곳에 자그마한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다면, 거기에서 더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너무 큰 건 주제넘고, 너무 작으면 초조하여 기다리기가 어려울 것 같고, 그만하게 자라난 회화나무 한 그루를 대문께에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회화나무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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