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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잊히지 않는 밥상 (1)

by 답설재 2019. 6. 11.






잊히지 않는 밥상 ⑴






아침의 서울1호선






    1


  그 밥상을 떠올리면 너무 멀리 와 있는 느낌입니다.

  거기 그날들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괜히 이렇게 떠나와 있고 어쩌면 그날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듯한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오십여 년 전에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아서 첫 해에 4학년을 담임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불러서 영 어색했고 이러지 말고 대학으로 돌아가서 다시 학생 신분이 되는 게 옳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생님이라고……' 싶었던 것인데 실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때서야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자니 교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특별한 각오를 다지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저절로 마음에 새기며 지낸 것들은 있었습니다. 가령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면 '그게 바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구나!'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힘 좀 세다고 그러면 쓰나!'가 당연한 논리로 다가왔습니다.



    2


  부임한 지 며칠 되었을까, 곧 가정방문 기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가정방문이 교사의 의무적인 업무였습니다.

  60여 명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가정을 언제 어떻게 찾아다닐지 아득하였습니다.

  무슨 일로 바빠서 가정방문이고 뭐고 일주일이 가고 있었는데, 그날도 어둑어둑해질 무렵 퇴근하며 삼포○천 건너 외딴집 아이가 생각나서 우선 그 집이라도 들러보자 싶었습니다.


  너무 나지막한, 그나마 거의 쓰러져가는, 어둑어둑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거기 집이 있는 줄도 모를 듯한 초가에 들어서며 인기척을 냈더니 아이가 어머니를 불렀고 아이의 어머니는 경황 중에 나를 얼른 단칸방으로 안내했는데 얼른 호롱불을 켰는데도 어둡고 좁아서 과연 그 방의 어디에 앉아야 할지 망설여졌고 게다가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온갖 냄새가 한데 쌓이고 쌓인 위에 또 쌓이고 또 쌓이면서 풍겨내는 역한 냄새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무슨 악취입니까?" 혹은 "문 좀 열어 놓아도 되겠습니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상황만으로도 가정방문 취지는 충분했으므로 그만 당장 일어서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인사를 건넨 다음 곧 돌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이 말이 통할까 염려했는데, 과연 그녀는 나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나지막하고 순한 말 한마디로도 나를 제압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겉으로는 그리 완강하지도 않은 그녀를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하여 나를 그 방에 남겨 놓고는 나를 위한 저녁밥을 지으려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밥 짓는 소리는 들리지는 않았고 나는 어두컴컴한 그 방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얼마 전까지 내가 다니던 대학과 그야말로 '졸지에'1 교사가 되어 근무하게 된 학교와 그리하여 저절로 헤어지게 된 사람들과 학교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나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3


  밥을 짓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쌀을 씻고, 불을 지펴서 끓이고, 뜸을 들이고, 어둠 속에서 그릇을 씻고, 반찬을 마련할 것이었고, 개나리 소반의 어디에 티끌이라도 묻었는지 점검하고 있겠지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바깥이 너무나 고요해서 그녀가 정말로 밥을 짓고 있는 것인지,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시간이 갈수록 모든 상황이 점점 더 궁금했고, 내가 무슨 옛날 얘기에 나오는 외딴집에 갇힌 건 아닌지 잠시 같잖은 생각까지 해보았는데 모든 것을 다 생각해보았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사발'이라고, 지금 우리가 쓰는 밥그릇의 서너 배는 되는 그 그릇에 단 한 숟갈도 더 담을 수 없을 만큼 '수북이' 그야말로 높다랗게 쌓아 올린 밥은 쌀과 보리쌀이 반반 정도로 섞여 있었습니다.

  반찬은 김치와 간장, 그리고 무엇인가 한 가지 정도 더 있었을 텐데, 오래전 일이어서 그 한 가지가 무엇이었던지 영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나는 그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할까? 기계라면 수리를 하고 말고 할 정도가 아니게 망가진 나에게 단축 마라톤이니까 한 번 뛰어보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할까요? 말하자면 그 밥을 먹는다는 건, 나도 그리 호강스럽게 자란 사람은 아니고 그때만 해도 결코 그리 호의호식하는 교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밥을 먹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런데도 나는 먹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일단 밥그릇 위로 쌓아 올린 부분이라도 먹어보자! 아무리 나약하고 먹는 양이 형편없이 적은 편이라 하더라도 명색이 사나이2가 그 정도도 못한다면 말이 되나!'


  그런데 반찬이 문제였습니다.

  김치는 지금 우리가 먹는, 중국산인지 아닌지 분간을 하지 못할 허접한 가게의 그 김치라도 얼마나 먹을 만합니까. 그날 저녁 그 김치는 오늘날 우리의 그 정체불명인 그런 종류의 김치도 아니었습니다. 흰 부분은 아예 찾기가 어려운 거무티티한 색이었고 먹기가 편리하게 자른 것도 아닌 상태로 놓여 있었습니다.

  김치를 그렇게 놓은 것은 아이의 어머니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반찬을 그렇게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먹기 좋게 잘라서 담은 김치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것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상상을 하지 못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그 집은 그런 집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냄새.

  방안의 고약한 냄새에는 그때쯤에는 익숙해져서 내가 그렇게 냄새가 짙은 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냄새가 밥에서도 반찬에서도 나고 있었고, 그 냄새는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마다 물씬물씬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식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나의 끈질긴 노력 외에 구체적으로 기억되는 건 전혀 없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어렴풋합니다.

  다만 나는 어려울수록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고 했고, 아이의 어머니는 나의 논리적이지도 않았을, 그렇다고 설득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그 말에 감동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그 밥의 밥그릇 위쪽 부분을 거의 다 먹어치웠고, 그즈음에서 이 정도를 먹고 숟갈을 놓으면 이 분이 얼마나 실망할까, 맛없는 밥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몰염치한 짓이 아닐까, 고민 고민하면서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나의 밥 먹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면서 마침내 반 정도는 먹은 다음에, 그만 하면 평소의 내 식사량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많이 먹은 것이었지만, 이미 뭘 좀 먹고 퇴근하는 길이어서 밥을 다 먹기가 난처하다는 거짓말을 덧붙여 수저를 놓았습니다.



    4


  나는 오십여 년 전 그날 저녁의 그 밥상을 잊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기이하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날 저녁 그 식사를 하고 있었던 그 일은 시시때때로 나를 한없이 위축시켜온 것이 아니었을까,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세상은 맛있는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고 살아왔고, 그런 생각은 나를 왜 그런지 자꾸 망설이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 망설임은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측은함보다는 호화로움 앞에서 드러나고 마는 내 누추한 몰골에서 비롯되거나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이 앞에 있을 때 그 사람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결코 잘난 척할 수는 없다는 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분명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앞에 있는 그 사람보다 사정이 조금 더 나은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진 것을 불쑥 내놓으며 "걱정 마세요! 이걸 쓰세요!" 할 수도 없는 그 망설임일까요? 나는 그걸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뭐랄까…… 나는 그날 그 저녁식사를 지금까지 그리 자랑스럽거나 떳떳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식사는 바로 누추한 나의 삶을 나타내는 한 가지 요소 같은 것? 그런 것, 나도 사실은 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그 식사를 한 것이 사실이고 어쨌든 그런 식사에  걸맞은 사람일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그런 식사를 일상적으로 하러 가야 할 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법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도 그건 일시적인 일일 뿐이고 곧 누추한 식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나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도 육십 대를 지나고 있을 그 '아이'는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썩 훌륭한 인물이 아니면 어떻겠습니까?

  인간으로서의 길을 가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그 오두막에 웅크리고 있던 그 어머니를 끝까지 혹은 지금도 "어머니!" "어머니?" 하며 지내는 인간이면 그만일 것입니다.

  나는 그날 저녁 그 밥을 그렇게 열심히 먹어치운 기억으로, 그 기억을 버리지 않고서, 그 아이가 지금은 그런 육십 대이기를 기대하며, 그 아이와 함께 살아왔을 것입니다.







  1.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해서 졸업을 하면 거의 '자동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본문으로]
  2. 미안합니다. 그땐 사나이니 뭐니, 그렇게 생각하고 지껄여대어도 괜찮은 시절이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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