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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엄살

by 답설재 2019. 5. 27.

 

 

 

 

 

 

1

 

아내로부터 엄살이 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여러 번? 솔직하게 말해도 좋다고 하면 당장 지겨워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나도 익숙해졌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내가 엄살이 심하다는 게 정설(定說)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려고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엄살이란 '아픔이나 괴로움, 어려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 나타내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사람은 ―그러니까 나도 하나의 사람이긴 하다면―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고 하거나 아주 쬐끔 아픈데 그걸 풍선이나 팝콘처럼 부풀려서 나타내는 게 일상적이어서 마침내 그게 태도가 되어버린 인간인 것입니다.

 

 

2

 

사실은 나는 약골(弱骨)입니다.

아주 고달플 땐 덜컥 어디가 아파서 병실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긴 했지만 십여 년 전까지는 그래도 실낱 같이 남은 '젖 먹은 힘'과 역시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텨왔는데 마침내 그것마저 동이 나서 둑이 터지듯 하니까 '정식으로'(진짜로) 병원에 가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말이 병원이지 거기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그렇게 서글픈 줄은 미처 몰랐었고, 한번 그렇게 입원해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신세가 된 데다가 이런저런 사소한 건으로도 자주 병원에 가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치과 가기'도 그 이런저런 사소한 건 중의 한 가지입니다.

이제 아내는 치과쯤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이 길러졌습니다.

 

 

3

 

저렇게 23번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 주차한 날도 나는 치과에 갔었습니다.

삼사십 분? '아~'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의무적으로 가야만 하는 연수장에서 강사가 뭘 지껄이든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심사를 가지게 되듯, 그날 나는 뭘 어떻게 하든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심사였습니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어디가 아프면 '병원에 가볼까?' 자신의 의지로 그걸 결정하거나 옆에서 누가 "병원에 가보지 그래요?" 권유해서 가는 것이지만 무슨 지병을 가진 경우에는 아주 고정적으로 드나드는 병원이 있게 되고, 그 병원 각 과(科)에서 정기적으로 '오라 가라' 하게 되니까 병원 가는 걸 이쪽에서 자의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날 그 치과도 그런 경우였는데 나는 사흘 뒤에 또 그 병원에 가야 하고 예정대로라면 단 1박 2일 입원이지만 명색이 입원도 해야 하므로 말하자면 만사가 귀찮은 느낌이었습니다.

 

삼사십 분이면 웬만한 날에는 침이라도 한두 번 '꼴~깍!' 했어야 정상적일 텐데 그날 나는 단 한 번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숨만 쉬고 그렇게 '아~'하고 있었는데 볼일을 다 본,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린 그 전문가는 마침내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한 마디 했습니다.

"오늘 참 잘 참으셨습니다!"

 

 

4

 

나는 '어? 내가 뭘 참은 것이지?' 하고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참 이상하다. 나는 엄살이 심한 사람이 분명한데…….'

아무래도 좀 헛갈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서 이런 생각들은 했었습니다.

 

"치료 중 불편하면 이야기하세요~" '이야기하라고 해서 아! 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므로 4~5초마다 한 번씩 그러니까 무슨 기구를 들이대기만 하면 손을 번쩍번쩍 들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거야 원, 애들도 아니고 무슨 노인이 이래요!" 하지나 않을까?……. 어쨌든 그쯤 되면 나를 오라 가라 부르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까?…….'

 

'이젠 치과 같은 건 아예 다 집어치워버릴까? 불러도 오지 말아 버릴까? 왜 멋대로 오지 않느냐고 무섭게 항의하면 어쩌지? 그러면 어떻게 대처하지?'

 

'치과 직원 삼십여 명? 그중 얼굴을 아는 이는 네댓 명쯤? 혹 아주 섭섭해할 사람도 있을까? 그러면 어쩌지?'

 

'이런 말을 하면, 치아는 오복(五福)의 한 가지라느니 죽기 전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배 부르고 한가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이 정도 나이에 치아 치료를 받는 건 국가·사회적으로 따져서 생산적인 일일까, 비생산적인 일일까? 몇 살쯤에 이런 일이 비생산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일까?'

 

'잘 참았다고? 신통하다며 더 자주 부르면 어떻게 하지? 그건 그렇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이런 칭찬을 받았다고 전하면 아내는 뭐라고 할까? 우습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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