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그 소리, 지겨워."
'또 저놈의 이야기, 언제까지 저러려나?'
심하면 짜증스럽고 역겹기도 합니다.
방송에서 듣는 몇 가지입니다.
"아이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바쁜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느라 바쁜 모습들입니다."
"고개를 넘자 푸른 들판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이날 모인 시민 서포터스는 단 3명이지만 그들의 취재 열기는 전문기자 못지않았습니다."
"오월은 사랑과 존경의 인사를 많이 하게 되는 달입니다."
2
'또 저런 소리!' 싶었던 몇 가지인데 기자나 작가는 "그런 말이 어때서?"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팔을 걷어붙였습니까?"
"관광객들이 쉬느라고 바쁘다고요?"
"들판이 어떻게 반겨주었습니까?"
"그들의 취재 열기가 전문기자인 당신보다 뜨거웠다는 걸 자존심을 걸고 사실로써 인정합니까?"
"오월은 그런 달입니까? 그렇게 말해도 괜찮습니까?"
이건 까칠한 나의 생각, 나의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 그 소리'라는 비판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경우와 개인적인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괜히 식상한 단어를 넣어서 "또 저 소리"라며 외면을 당할 수도 있고,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해서 가령 "아버지는 함께 앉으면 꼭 저런 식"이라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전철에서 며칠 전 신문에 난 내용이어서 이미 온 세상이 다 아는 걸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상투적으로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3
'또 그 소리'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상투어로 분류될 것입니다.
상투어,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늘 똑같이 사용하는 말'.
당연히 영어에도 있겠지요? 신문 기사를 봤습니다.
"It rains cats and dogs.(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는 상투어가 아니고,
"busy as a bee(벌처럼 바쁘다)"는 상투어랍니다.
이런 걸 어떻게 구분합니까?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공짜 점심은 없다)"
"think outside the box(새로운 사고를 하다)"
"Time heals all wound.(세월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세월이 약)"
"read between the lines(행간을 읽다)"
"tip of the iceberg(빙산의 일각)"
hot potato(뜨거운 감자),
paradigm shift(패러다임의 전환),
win-win(윈윈)
모두 상투어(클리셰)라고 했습니다.1
심지어 그중 일부는 영어 교과서·학습서에도 나오는 표현이랍니다.
기사에는 또 영어의 진부한 표현을 모은 책(『English Cliche 사전』)이 소개되어 있고, "클리셰 선별 능력은 영어 학습자가 중급에서 고급으로 승급할 때의 마지막 관문"으로 뾰족한 수는 없고 "사용하려는 표현을 검색창에 cliché와 함께 쳐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4
영어에 대해서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It rains cats and dogs."2는 상투어가 아니고 "busy as a bee"는 상투어라니……..
그렇지만 그건 영어를 모르는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다른 나라에 가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며 살아갈까요?
검색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오래 살면 원주민처럼 익숙해질까요? 검색해보지 않아도 될까요? 그렇겠지요?
내 딸은 주말마다 전화를 해옵니다.
당연히 한국어로 통화합니다. 내 말에 '또 그 소리'가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을 하는 본인은 지금 상투어를 쓰는지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쓰고 있다면 끔찍합니다.
.......................................................................
- 중앙일보, 2019.5.11.28면. 김환영의 영어 이야기 '영어서 금기시 하는 상투적 표현, 우리 교과서에 버젓이'
- 요즘 젊은이들의 댓글에서 '개오짐'을 발견했습니다. 개는 강조를 할 말에 붙이는 접두사(?)이고(개쩐다, 개사랑합니다...ㅋㅋㅋ) '오지다'는 어린시절 어른들이 콩 같은 걸 까며 "참 오지다"고 표현하는 걸 자주 봤습니다. It rains cats and do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