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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박두순 엮음《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by 답설재 2019. 1. 24.

가슴으로 읽는 동시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박두순 해설하고 엮음, 열림원 2019

 

 

 

 

 

 

 

 

1

 

박두순 시인이 수요일 낮에 좀 만나자고 했습니다.

오래전에 한 약속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책이 나왔다고, 그 책이 아주 예쁘다고 했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다고? 예쁘게 나왔다고?'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릴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우송되어 왔습니다.

그 '예쁜 책'입니다.

 

 

2

 

어른들 읽으라고 만든 '동시 해설집'입니다.

면지 한 페이지에 단 두 줄로 된 글이 있습니다.

 

마음이 고장난

이 시대 어른에게

 

이 짧은 글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러워진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 내 마음은 왜 이렇게 고장이 났을까.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박 시인의 이런 생각이 참 좋습니다.

 

"가슴 뜰에 동시 향기를 채워 보세요. (…) 시 읽는 선생님과 학생, 아버지, 어머니, 정치인, 경제인이 많은 나라는 몸이 잘 사는 나라를 넘어서 마음이 잘사는, 마음이 부자인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이런 표제작이 들어있는지 69편의 동시 제목을 얼른 살펴보았습니다.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우산 할아버지 노점에

써 놓은 글씨

'하늘 고칩니다.'

 

비 새는 하늘

찢어진 하늘

살 부러진 하늘

말끔하게 고칩니다.

 

머리 위

고장 난 하늘

모두 고칩니다.

 

 

― 최 진(1961~ )

 

 

박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릴 적, 장마철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어른들이 걱정했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이 할아버지가 써 붙인 '하늘 고칩니다.'라는 문구도 이런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비 새고, 찢어지고, 살 부러진 우산을 '고장 난 하늘'이란다. 망가진 우산 수리는 '머리 위 / 고장 난 하늘'을 고치는 것이고. 참 시적이다. 우산 수리 할아버지가 시인이다. 최진 시인은 이 할아버지에게 '하늘 고칩니다'라는 시구 이용료를 내야겠다, 하하.

봄비가 곱게 내리는 날이면 동요 '우산'이 입가에 핀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정겨운 풍경이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 한 편이 비 오는 날도 기분 좋게 한다. 우산이 고장 나면 이 할아버지에게 가서 고치고 싶다.(108~109)

 

 

나는 이 시집에 실린 69편의 동시를 읽으며 '고장 난 마음'을 얼마쯤 고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