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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 언니》

by 답설재 2019. 2. 12.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 언니》

이철수 그림

창비 2018 개정 4판 24쇄

 

 

 

 

 

 

 

1

 

동네 도서관 어린이실에서 빌렸습니다. 등표지에 "교과 6학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교장이었을 때 "몽실 언니" "몽실 언니" 하는 걸 듣긴 했지만 "나는 안 읽었네." 말하진 않았으니까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나 '교장은 읽었겠지?' 했을 것입니다.

이제 몰래 읽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느낌입니다.

 

어디서 몽실 언니를 실제로 봤을 것 같습니다.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게 볼썽사나워서 스치는 그 순간도 참지 못하고 외면했을 것입니다. 그게 나의 본래 성정일 것입니다.

'어언 80대를 가고 있을 그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꼽추 남편과 그 슬하에서 성장한 두 남매는 잘 지내겠지? 신분상승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들 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2

 

어머니는 몰래 개가를 해서 그 집에서도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몽실이는 그 집 새아버지가 두들겨 패서 절름발이가 되어 쫓겨왔습니다. 착하고 예쁜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 난남이를 낳고 바로 굶어 죽습니다. 절름발이 몽실이는 거지가 되어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그 밥으로 병든 아버지와 여동생 난남이를 먹였습니다. 아버지는 군에 갔다가 포로가 되어 도망쳐 왔지만 인민군이 소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허벅지를 지져서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앞뒤를 자르면 이런 처지의 몽실이 얘기입니다.

 

 

3

 

"화냥년 같은 에미가 무엇 땜에 보고 싶다는 거야? 보고 싶거든 당장 가 버렷!"(58)

 

안팎에서 온갖 학대를 다 받고 지냈는데도, 그래서였을까? 몽실이는 그리움으로 살고 생각도 똑바릅니다.

다 읽은 책을 들고 몽실이 그리워져서 읽은 책장을 다시 넘겨보았습니다.

 

밤마다 앞마당에 거적을 깔고 혼자 누워 몽실은 별을 세면서 울었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댓골 엄마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었다. (60)

 

몽실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쑥떡을 치마폭에 감추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왜, 벌써 가니?"

"그래……."

몽실은 남주가 이상해서 눈이 동그래져 바라보는 것을 모른 척 뛰어나왔다. 흡사 무엇을 훔쳐 가지고 가는 기분 같았다.

집에 와서 몽실은 가지고 온 쑥떡을 북촌댁 앞에 내밀었다. (84~85)

 

"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여요." (191)

 

몽실이의 눈에 파랗게 불길이 올랐다.

"죽여 봐! 어서 죽여 봐!"

"……."

의용군 아이와 몽실의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둘은 그렇게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용군 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이……."

의용군 아이는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몽실의 눈에도 물기가 가득 괴어 들었다. 몽실은 울음을 삼켰다. (131~132)

 

이 부분들만이 몽실이를 대변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4

 

군데군데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미국을 믿지 마라,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힘이든지 남의 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소련의 힘을 의지하면 소련의 식민지가 되고, 미국을 의지하면 곧 미국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일제 삼십오 년은 어리석은 우리 어른들이 일본의 힘을 의지하려다가 결국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맡겨 버린 결과가 되었지요. 을사보호조약이란 게 바로 그런 못난 약속이었습니다."

최 선생은 하던 말을 잠깐 그치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히 듣고 있었다.(76~77)

 

비릿하고 우울한 항구 도시는 먹고살기 위해 서로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먹고사는 일 외에 좀 더 즐기기 위해 남을 해친다. 어떤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고 많이 차지하는 것을 좋아했다.(268)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290)

 

 

5

 

몽실이…… 아버지는 정 씨, 새아버지는 김 씨(김주사)이고, 어머니는 밀양댁, 새어머니는 북촌댁입니다.

 

종호, 영득, 순덕, 희숙, 남주, 경애, 을순, 정식, 종남, 구만, 난남, 종구, 영순, 기찬, 혜숙, 성구, 성대, 금순, 기복이와 기덕이, 이런 이름들이 보였습니다.

 

 

고모, 배나무 집 할머니, 살강댁, 앵두나무 집 할아버지, 장골 할머니, 박 씨 아저씨, 인민군 대장, 인민군 청년, 인민군 여자, 석류나무 집 문경댁, 홰나무 집 김 씨 아저씨, 삿갓 집 윤 씨 아저씨, 대추나무 집 아들, 종구네 아버지, 최민구 아저씨, 배근수 청년, 서금년 아줌마, 양복을 차려 입고 허옇게 살찐 신사, 흑인 병사, 꽃 파는 애, 미국 사람, 미국 군인, 구두닦이 아이, 양공주 아가씨, 깡통을 든 거지, 맹인 거지, 누더기를 입은 불량배, 빵장수 아저씨, 양공주인 수선화와 꾀꼬리, 노랑머리 병사, 누런 금테 안경을 쓴 아주머니, 그리고 기복이와 기덕이 아버지, 엄마(몽실)도 나옵니다.

 

몽실이의 고향 마을은 노루실이고, 살강 마을, 장터 마을, 댓골, 장골, 까치바위골, 샛들, 삼거리, 개암나무골, 읍내 거리, 항구 도시 부산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람이나 땅이나 대부분 그리운 것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