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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스텐 나돌리 《마틸다의 비밀 편지》

by 답설재 2019. 2. 23.

스텐 나돌리(소설) 《마틸다의 비밀 편지》 Das Glueck des Zauberers

이지윤 옮김, 북폴리오 2018

 

 

 

 

 

1

 

마법사 파흐로크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투명인간으로 변하고 벽을 통과하는 등 갖가지 마법으로 '팔을 높이 쳐드는 사람들'(히틀러)의 횡포와 격렬한 전투를 뚫고 살아남습니다.

 

마침내 마법의 대가 반열에 오르지만 라디오 수리공, 발명가, 심리치료사, 자선활동가, 영화 촬영장 특수 소품 담당자, 민박집주인, 여행가 등으로 위장하여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전후 사회의 불신과 분열, 추위와 굶주림, 무질서를 해결하고 사회 개혁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고 애를 썼고 마법사들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후손의 성취를 염원하여 106세가 되어서는 자신의 마법을 전수하려고 손녀 마틸다에게 편지를 씁니다.

 

  ● 팔 늘이기

  ● 아름답게 그리고 다르게 보이기

  ● 공중에 뜨기와 날기

  ● 사랑 찾기

  ● 투명인간 되기

  ● 벽 통과하기

  ● 강철 되기

  ● 생각 읽기

  ● 돈 만들기

  ● 사람을 번창하게 만들기

  ● 지혜에 도달하기

  ● 세상에 이별 고하기

 

편지는 열두 통이지만 마법의 종류가 열두 가지는 아닙니다. 그가 구사한 마법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이 편지는 이 마법들을 주제로 한 파흐로크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습니다.

 

 

2

 

두 번째 편지를 읽을 때까지는 '이게 정말 마법 이야기인가?' 의심스러웠습니다.

 

물론 아름다움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지만 아름다움이 일깨우는 것이 비단 사랑만은 아니란다. 아름다움은 족쇄를 채우고 굴복시키고 심지어 노예로 만들기도 하지. 어떻게든 아름다움의 '시종'이 되고자 하는 남자들이 드물지 않거든.

아름다움은 어떤 경우에도 위력을 발휘한단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소녀는 선생님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 선생님이 스스로가 공정하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고 싶어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럴 때는 오히려 실력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되지. 너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실일 거야.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을 좀 더 신뢰한단다.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학급 반장으로 뽑히거나(슈나이데바인처럼), 누드모델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지. 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 좋은 사람은 잘생겼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지.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그가 못생겼으리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다.(45~46)

 

무척 재미있는 얘기지만 '손녀에게 전해주고 싶은 인생관을 쓴 편지일까? 그걸 마법인양 이야기하여 우리에게 매력을 갖게 하려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3

 

마법을 전수하려는 편지인 건 사실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마틸다가 운집한 마법사들의 귀를 사로잡는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 연설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대의 마법사들은 위대해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당신들 또한 그 세대가 한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마법사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입니다."(402)

 

마법사 파흐로크와 그의 손녀 마틸다를 연결해준 발데마르 3세의 헌사에도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법사들이 다시금 우리 삶이 풍요로워지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 그들은 꿈의 세계를 소생시키는 데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완전히 추방된다면, 동화 속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요. 어른들은 순진함을 잃어버리고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로 시작하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야기들도 사라져 버릴 겁니다.(397~398)

 

나도 마법사들이 있는 세상이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이 몰라서 그렇지 그런 세상이라는 걸 믿고 있겠습니다.

 

 

 4

 

'위대한 사랑은 음치에게도, 온 세상이 실패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법'(101)이라는 파흐로크의 인생관도 멋진 것이었습니다.

눈여겨보고 싶은 그의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인생은 마법으로 가득하고 돈만 만들기에도 너무 짧단다. 그래, 109세에게도 그렇단다. 일주일에 11시간 이상을 돈 만드는 일에 쓰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인생 낭비야.(273)

 

(…) 인생은 길더구나. 인생이 짧다고, 이것저것 하기에는 너무 짧다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도 해. 그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시간은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 그걸 깨닫기 위해 굳이 109세까지 살지 않아도 된단다.(299)

 

내 삶에서 늘 마법이 함께했지만 그건 부차적인 요소였어.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또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을 도모하고 실행해 왔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때가 온단다.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부지런히 떨어지고 새로 돋아나지만, 전체 잎사귀의 숫자는 한결같은 나무 한 그루처럼 서 있는 자리를 무던하게 지키지.(306~307)

 

 

읽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