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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보지 않고도 믿고…"

by 답설재 2019. 1. 23.

 

 

 

1

 

상인들 중 장난기가 있고 재치 있는 사람이 돈키호테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1

 

"기사님. 저희들은 기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훌륭한 여인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을 좀 보여주십시오. 그분이 정말로 기사님께서 표현하신 대로 아름답다면 기사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기꺼이 고백하겠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녀를 보여준다면 그렇게 분명한 사실을 고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녕 너희들이 맹세하지 않는다면 나와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기사도에 따라 한 사람씩 덤벼도 좋고, 너희 같은 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못된 관습이나 습관대로 한꺼번에 덤벼도 좋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여기에서 너희들을 상대할 것이다."

 

돈키호테의 '그녀'는 허구적 인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키호테의 저 말 "중요한 것은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한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다고 반신반의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잊히지도 않았습니다.

 

 

2

 

그러다가 '그게 그럴 수가 있겠구나' 싶게 하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현대문학』에 실린 출판 전문가(?) 장은수의 에세이 '아랍인 이야기'였습니다.2

 

사내는 사악한 악마를 불러들인 재난과 맞서는 사나운 모험을 기꺼이 행했지.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랑을 무서워하지 않았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생겨나지 않은 악당과 싸울 수 있었고 만나지 않은 여인을 사랑할 줄 알았지. '보이는 것' 때문에 자신을 수련하는 것은 누구나 웬만하면 하는 일이잖아. 호랑이가 쫓아오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인간은 성숙의 길로 들어서는 법. 사내는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눈치챘던 것 같아.

 

 

3

 

그러고 보니까 그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글을 전에도 읽었었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이란 한 사람 인간의 신체적 존재와는 얼마나 관계가 희박한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나는 전혀 알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나의 사랑, 나의 사랑에 대한 생각, 정신적 이미지를 사랑하면서 바라보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당시 나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구애됨이 없이 지금과 조금도 다름없이 '사랑의 직시直視'에 마음으로부터 몸을 바쳤을 것이다.3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마침 블로그 『Blue & Blue』에 실린 「도미 아내 설화」에서 의미 있는 문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개루왕이 도미를 불러 "비록 부인의 덕은 정결이 첫째라지만 만일 남이 모르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인다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는 드물 것"이라고 하자 도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측량하기 어려우나 저의 아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죽는다고 해도 딴마음은 먹지 않을 것입니다."

                    ☞ 「도미 아내 설화」

                           [http://blog.daum.net/yoont3/11302593](http://blog.daum.net/yoont3/11302593)

 

4

 

"내가 너희들에게 그녀를 보여준다면 그렇게 분명한 사실을 고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저 돈키호테의 허풍선이 같은 말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집니다.

 

"정녕 너희들이 맹세하지 않는다면 나와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기사도에 따라 한 사람씩 덤벼도 좋고, 너희 같은 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못된 관습이나 습관대로 한꺼번에 덤벼도 좋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여기에서 너희들을 상대할 것이다."

 

비록 무참히 쓰러진다 해도 여기까지의 그의 호쾌한 장담은 결코 허투루 들리지도 않습니다.

 

 

5

 

덧붙입니다.4 2에 옮긴 저 글에는 이 부분도 있었고, 사실은 이 부분 때문에 이 글을 쓸 생각을 했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며,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즉 세상에 없는 것을 존재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좋은 문학이지. 이 사내는 잘 알았어. 문학을 닮을 때 비로소 인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당연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현실에 맞추어 이야기를 쓰지 않고, 이야기에 맞추어 현실을 다시 쓰는 쪽을 택하지.5

 

이 부분을 읽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물론 책에서 「아랍인 이야기」를 읽은 경우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다 쓸데없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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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11, 초판 26쇄), 70.
2. 장은수「아랍인 이야기」『현대문학』2019년 1월호(364~370), 367.

3.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조성기(소설) 「월명사의 노래」『현대문학』(2019년 1월호 61~82), 74에서 재인용.
4. 2019.2.2.
5. 위의 책,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