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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요」

by 답설재 2018. 12. 15.

 

2018.12.6.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요

 

 

황인숙

 

 

어젯밤 눈 온 거 알아요?

어머, 그랬어요?

아무도 모르더라

토요일 밤인 데다 날도 추운데 누가 다니겠어요 저도 어제는 일찍 들어갔어요

한밤의 일을 누가 알겠어? 우리나 알지

4월인데 눈이 왔네요

처음에는 뭐가 얼굴에 톡 떨어져서 비가 오나 하고 가슴 철렁했는데, 싸락눈이더라구 자정 지나서는 송이송이 커지는 거야

아, 다행이네요

그러게, 비보다는 눈이 낫지

 

동자동 수녀원 대문 앞 긴 계단

고양이 밥을 놓는 실외기 아래

밥그릇 주위에 졸리팜 곽 네 개

모두 뜯긴 채 흩어져 있었지

빠닥빠닥 블리스터들도

빠짐없이 비어 있었지

졸리팜 가루 같은

싸락눈 쏟아지던 밤이었지

 

 

――――――――――――――――――――――――――――――――――――――――

황인숙 1958년 서울 출생. 1984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行 야간열차』 등.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형평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현대문학』 2018년 5월호 220~221쪽.

 

 

 

밤새 내린 눈이 얘깃거리가 되는 아침나절이 좋다.

다시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눈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착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다 그렇진 않아서 그게 아쉽다.

눈을 내려주면서 다들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다 착해지진 않고 하필 더 착해지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더 착해져 버리면 세상은 점점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아침식사가 걱정인 사람에게는 그 눈이 너무나 차가워서 눈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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