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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문정희 「도끼」

by 답설재 2019. 1. 14.

 

 

 

도 끼

 

 

                                                                                      문정희

 

 

도끼를 잘 쓰는 사내를 사랑한 적이 있다

불끈거리는 그의 팔이

허공을 빠르게 선회한 후

푸른 도끼날로 급소를 내리칠 때

태어나는 번개를

그 눈부신 냉소의 언어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때 뜻밖에 나의 어깨에서 솟아나는 날개

도끼를 잘 쓰는 사내가 사랑하던 날개를

쩡쩡! 솟아나는 깃털을

하나의 리듬으로 시를 쓴 적이 있다

검은 젖을 빠는 입술

아, 덧없는 젖꼭지

일순 도끼로 내려쳐서

얼음 속 빗금에서 불꽃을 꺼내는

야생의 도끼가 내리친 급소의 언어를

번개와 리듬을 깊이 사랑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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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새떼』 『찔레』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작가의 사랑』 등.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시카다상〉 등 수상.

 

 

 

『現代文學』 2019년 1월호 86~87.

 

 

1

 

앙토니는 제방 위에 우뚝 서서 앞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햇살이 직각으로 내리꽂히는 호수 물은 석유처럼 무겁게 보였다. 가끔 잉어나 메기가 지나가면 벨벳에 주름이 생겼다. 아이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대지는 햇살을 받은 땅과 진흙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로 묵직했다. 이미 떡 벌어진 그의 등짝에는 7월의 햇살이 남긴 붉은 반점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그는 축구선수용 티셔츠를 걸치고 가짜 라이방만 썼을 뿐 알몸이었다. (…)*

 

"이미 떡 벌어진 그의 등짝에는"

작가는 여성이라고 확신했다. 그러자(그렇게 확신하자) 이후의 단어들은 그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 주었다.

되돌아가서 작가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니콜라 마티외Nicolas Mathieu.

'봐, 맞잖아!'

 

 

2

 

문정희 시인의 시를 보고 가슴이 철렁한 적이 있다.

지금도 "문정희" 하면 그 철렁거림이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재연된다. 나는 그 철렁거림은 물론이고 그 시를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다.

비밀 같은 것이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

 

 

그때, 처음으로 가슴이 철렁했을 때, 생각했었다. '이 시를 어떻게 썼을까……. 괜찮았을까?'

그 '사정(事情)'을 시인은 훌훌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3

 

『現代文學』에서 시인의 이름과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틀림없다!'

 

그리고 그 기대는 그대로 실현되어 있었다.

시인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내'에 대한 그 동경('사랑')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다음에 또 이 시인의 이름을 발견하면 나는 또 이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그 페이지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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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2018년 12월호, 324~335, 이재룡 '구약 외경 「집회서」 44장 9절'에서.
**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시인생각, 한국대표명시선 100, 2013), 8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