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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제니「발화연습문장」

by 답설재 2018. 11. 22.

발화연습문장

―어떤 고요함 속에서 곡예하는 사람을 위한 곡을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는 밤

 

 

 

이제니

 

 

 

제목과 무관한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줄 와서 읽고 한 줄 와서 지운다. 한 줄 와서 지우고 한 줄 와서 쓴다. 누군가 네게로 와서 살았고 너 역시도 누군가에게로 가서 살았다. 나는 누군가의 몸이었던 적이 있다. 나는 누군가의 영혼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 밤 오래오래 아무도 모르게 내리던 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잊고 있었던 전생을 이해하듯이 닫힌 입의 숨은 감정을 헤아려본다는 것. 그러니까 다시 어떤 고요함 속에서 시작한다. 너는 한밤중 문득 깨어나 곡예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곡예하는 사람은 어떤 이미지로서 너를 사로잡는다. 한계상황으로 너를 밀어넣는다. 곡예는 지난한 침묵을 요구한다. 곡예는 지극한 집중을 요구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얼마나 온전히 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세계와 세계의 싸움이다. 그러나 너는 세계라고 부를 만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너는 네가 있었고 네가 있어야만 하는 시간과 장소를 알지 못한다. 이미 너무 많은 것과 곳이 너와 너를 겹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함과 알 수 없음 사이에서 누군가의 닫힌 입이 어딘가에 집을 짓는다. 너는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 들어앉아 있다. 밖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겨우 의지해 굴의 벽면에 하나하나 선을 긋는다. 빗금은 하루하루 자신의 그림자를 늘려갔으므로 너는 늘어난 빗금의 자리만큼 사라져가는 시간의 속성을 즉각적으로 이해한다. 늘어나는 빗금의 길이만큼 너는 살아 있었던 날들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곡예는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 거듭되는 시간 속에서 삶은 곡예와도 같다는 누군가의 말을 너는 떠올린다. 어떤 고요함 속에서 곡예하는 사람을 위한 곡을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는 밤. 그러니까 제목은 언제나 하나의 미궁이고 하나의 심연이고 하나의 함정이다. 고요를 의식하는 순간만큼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생김새는 꼭 같지만 성격은 다른 쌍둥이 자매의 낮과 밤처럼. 너는 쓴다. 피로와 열패감 속에서. 나는 읽는다. 절망과 손수건 속에서. 살지 않았던 날들을 세어보고 있자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의 신비로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너는 아직도 여전히 어떤 고요함 속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어두운 굴. 어두운 굴의 벽면. 어두운 굴의 벽면과 빗금. 어두운 굴의 벽면의 빗금을 뒤덮는 빛의 일렁임. 어느 결엔가 네가 그어놓은 빗금도 하나둘 지워져가고 있었으므로. 이미 지나온 한 장면처럼 어느 날 문득 외부로부터 날아들어 창문을 깨뜨리는 돌멩이가 있었고. 너는 세계 속으로 이미 던졌으므로. 너는 세계 속으로 이미 던져졌으므로. 너는 유연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그 모든 사물들의 감정을 헤아려보려는 네 자신을 이해하려고 한다. 너는 누군가의 닫힌 입 속에서 허공을 향해 영원처럼 날아가는 돌멩이 하나를 가져온다. 네 곁에 두려고. 네 것이 아닌 것처럼 들여다보려고. 결국 무엇이든 어딘가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추락하는 것도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닙니다.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돌멩이는 점점 커지다가 종내는 줄어들고 줄어들었으므로. 너는 없는 돌멩이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까 다시 어떤 고요함 속에서 곡예하는 사람을 위한 곡을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는 밤. 없는 돌멩이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해변의 모래가 쓸려 갔다 쓸려 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니요. 아니요. 그것은 해변의 모래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거리 한가운데 서서 맨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소리입니다. 빗줄기는 스며들고. 빗줄기는 튕겨나고. 어떤 줄기찬 힘이 나를 씻길 수 있나요. 어떤 가없는 힘이 나를 움직일 수 있나요. 아니요. 아니요. 뒤집어쓴 것은 제가 아니라 향기입니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너에게 말하듯 나에게 말한다. 중력을 벗어나는 어떤 움직임의 힘을 믿는다고.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 너는 줄곧 말했기 때문에. 굴 속에 앉아서. 낮고 길고 깊은 굴 속에 앉아서. 너는 어렴풋이 곡예에 어울리는 어떤 음조와 음보의 느낌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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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출처 :『현대문학』 2018년 7월호, 116~118, 146.

 

 

 

 

재미없는 시구나 싶었습니다.

시 '전문가'는 뭐라고 했는지 『현대문학』 8월호의 평론을 봤더니 내가 보기에는 '보나마나'한 글이어서 '어쩔 수 없지' 했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이 시를 보니까 돌연 생각들이 피어올랐습니다.

 

한 번만 읽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시도 있고, 읽을수록 빠져드는 시도 있습니다.

나는 늘 후자가 더 좋았습니다.

 

읽을 때마다 갖가지 생각이 몰려오고, 살아온 날들이 떠오르고, 그것도 어떤 일이 또 생각나고 또 생각나는 게 아니라 읽을 때마다 다른 과거가 되살아오고 다른 생각들이 몰려왔으므로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무언가 꼭 말하고 싶은 게 떠오를 수도 있고, 그렇긴 해도 그것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운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