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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규리(시) 「아테네 간다」

by 답설재 2018. 11. 8.

아테네 간다


이규리


한밤중 거실에 나오니
마룻바닥에 깔린 달빛
눈부셔
거기 누가 왔나

달빛 내려 퍼지던 아테네의 언덕이 생각나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연주하던
야니의 피아노가 들리고

먼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걱정하며

잠은 다른 잠으로 가고

한밤중 홀로 아테네 간다


그렇지 달빛이었지

달빛 아테네였지
피아노 앞의 그가 흰 소매를 움직일 때마다 신들이 미끄러져 나와
심심하던 그들은 춤을 추었지
파르테논의 기둥을 건반처럼 만지던 법과 생과 사

신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저 신들의 나라에 입성하는 거

아이야

공부가 힘들면 잠시 신들의 회의나 엿볼까
그중 아주 평범하고 인자한 신도 있는 거라
꿈이 신탁이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으나

달빛 요요히 뿌려 광장이 이마가 훤하지 않니

아크로폴리스가 된 거실은

반짝, 누추함도 은은하여
짐짓 신관이 되어도 좋은 거

마룻바닥을 미끄러지는 달빛 타고

신화가 된 숨과 음과 밤 이끌고
다음,
우리 에게해 간다
델피 간다


――――――――――――――――――――――――――――――――――――――――
이규리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現代文學』 2018년 11월호 82~83.

 

 

 

 

 

 

 

 

얼굴에 어린 달빛으로 잠이 깬 일은 여러 번이었다. 그런 밤중에 나는 예전에 있었던 일들, 그런 일에 얽힌 사람들을 떠올리곤 했다. 때로는 추억으로 고왔지만, 그게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면 나라는 이 인간도 '참으로 어쩔 수 없는 한 누추한 인간'이라는 걸 그 달빛 아래, 그 달빛에게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설사 고운 일이라 하더라도 이 나이에 그 달빛 속에서 눈물짓다니……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 생각났다 하더라도 이 나이에까지 이르러 그 달빛을 바라보며 "이것 봐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달빛에 자신의 심성을 비춰볼 수 있지 않겠니?" 원망이나 하다니…… 미친 짓 아닌가. …… 그래. 이제 그러지 말자. 다 그만두고 그 시간에 나도 어디를 가도록 하자. 아테네가 아니면 어떠랴. 한때 가족과 함께 살았던 눈물겨운 곳이면 어떠랴. 지금은 낯 모르는 누군가가 살고 있겠지. 굳이 들어가진 말고 그 주택, 그 아파트를 바라보기만 하다 돌아오면 되겠지? 유명하지 않은 곳이면 어떠랴. 한때 아이들을 가르치고 월급도 받던 고마운 그 학교들, 교육기관들, 그 건물로 들어가 밤중이어서 사람들도 없는 그 텅 빈 방에서 잠시 서성이다 돌아오면 또 어떠랴…….

 

 

  한밤중 거실에 나오니

  마룻바닥에 깔린 달빛

  눈부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