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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지윤(시) 「러시아의 연인들」

by 답설재 2018. 11. 2.

러시아의 연인들

 

 

김지윤

 

 

내일이 되면 돌아온다던 당신이 오지 않아 당신을 찾아 나섭니다. 빨래는 건조대에 널어놓았고 안 쓰는 전자제품의 콘센트도 뽑아놓았습니다. 불 켜진 곳은 없나 집 안을 둘러보는 일 역시 빼놓지 않았습니다. 현관문을 잠그고 길을 걷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걸음은 바닥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바닥을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딘가 미련한 구석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선 오래된 연인들이 헤어질 때 예카테린부르크로 간다고 했죠. 등을 맞대고 한 명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또 한 명은 모스크바로. 그렇게 서로를 뒤로한 채 걷다 보면 다시 한 번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죠.

 

아무리 걸어도 길이 끝나지 않으니 나는 난감합니다. 당신과 함께 걷던 길들이 어디선가 흘러나와 펼쳐지는 게 아닐까 의심해봅니다. 성큼성큼. 앞서 나가지 말라던 투정 섞인 말투가 들리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만 당신은 없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내일의 당신, 그리고 오늘의 내가 되는 일. 근사한 이야기라며 반짝이던 당신은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습니다.

 

몇 번의 낮과 밤을 바꾸어 놓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내일이란 당신에게만 허락된 날일까요?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세계의 낮과 밤을 돌리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과 내가 다른 시간 속에 살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나는 거리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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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1985년 전남 나주 출생. 2015년 『창작과 비평』 등단.

 

 

『現代文學』 2018년 8월호 82~83.

 

 

 

 

 

누가 이런 애틋한 얘기를 해줄까요, 시인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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