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양 한 마리
김 형 술
춤을 추듯 가볍게 바위 절벽을 뛰어오른다. 한 점 망설임 없이 폭설을 가로지른다. 허공에서 자고 허공에서 꿈꾸고 허공에서 맞는 날카로운 새벽, 두려움으로는 허공을 건널 수 없다. 절박한 목숨만이 허공을 건너는 건 아니다. 그저 평온한 무심 하나로 허공에 단단한 계단을 내며
인사를 하듯 경전을 외듯 푸른 양 한 마리 바위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둥글게 말린 뿔로 허공을 들이받는다. 발자국을 품지 않는 허공, 절벽 위의 거처를 숨겨주는 허공을 강철 뿔 강철 발굽 가뿐하게 딛어 지상에 내려앉는다. 이토록 남루한 지상의 양식으로 천년 시간의 허기를 거둔다. 설산이 찬 아침을 데려와 석양이 붉은 산을 데려갈 때까지
티베트 푸른 양 한 마리 벽 속에서 뛰어내린다. 머리맡에 쌓인 첩첩 벽들 가로지른다. 두려움으로 솟아오른 침대에 웅크린 둥근 잠들 들이받으며 침대 위 겹겹 어둠, 침대 아래 천길 허공을 달린다. 밤은 깊고 무겁고 혼곤하다. 이토록 초라한 지상의 목숨들 깨우는 푸른 양 한 마리 또 한 마리. 커튼에 불붙은 새벽 푸르게 불타오른다.
――――――――――――――――――――――――――――――――――――――――――――――――――
김형술 1956년 경남 진해 출생. 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의자, 벌레, 달』 『나비의 침대』 『물고기가 온다』 『무기와 악기』 『타르초, 타르초』 등.
『現代文學』 2018년 9월호 88~89.
2018.10.1. 그 양이 사는 산 같았던…
저 푸른 양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몇 달 전? 몇 년 전?
티베트?
하늘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 어디였는데…….
깎아지른 절벽 틈새 틈새를 찾아 성큼성큼 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그 양은 겨우 발을 디딜 만한 그런 곳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는데, 왜 하필 저 험준한 곳에서 살아갈까 싶었습니다.
절벽의 다른 곳에는 또 다른 양이 있었습니다.
양들은 무리 지어 다니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무리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자꾸 생각하면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모습 외에 다른 모습이 끼어들게 되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방 안에서도 그 양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양이 시가 되어 찾아오다니…….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남편」 (0) | 2018.10.20 |
---|---|
이장근(동시) 「시키지도 않은 일」 (0) | 2018.10.10 |
박상순(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 (0) | 2018.09.28 |
「내 앞의 상자, 눈이 큰 상자」 (0) | 2018.09.11 |
박상순(시집) 《Love Adagio》 (0) | 201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