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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푸른 양 한 마리」

by 답설재 2018. 10. 2.






푸른 양 한 마리



김 형 술



  춤을 추듯 가볍게 바위 절벽을 뛰어오른다. 한 점 망설임 없이 폭설을 가로지른다. 허공에서 자고 허공에서 꿈꾸고 허공에서 맞는 날카로운 새벽, 두려움으로는 허공을 건널 수 없다. 절박한 목숨만이 허공을 건너는 건 아니다. 그저 평온한 무심 하나로 허공에 단단한 계단을 내며


  인사를 하듯 경전을 외듯 푸른 양 한 마리 바위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둥글게 말린 뿔로 허공을 들이받는다. 발자국을 품지 않는 허공, 절벽 위의 거처를 숨겨주는 허공을 강철 뿔 강철 발굽 가뿐하게 딛어 지상에 내려앉는다. 이토록 남루한 지상의 양식으로 천년 시간의 허기를 거둔다. 설산이 찬 아침을 데려와 석양이 붉은 산을 데려갈 때까지


  티베트 푸른 양 한 마리 벽 속에서 뛰어내린다. 머리맡에 쌓인 첩첩 벽들 가로지른다. 두려움으로 솟아오른 침대에 웅크린 둥근 잠들 들이받으며 침대 위 겹겹 어둠, 침대 아래 천길 허공을 달린다. 밤은 깊고 무겁고 혼곤하다. 이토록 초라한 지상의 목숨들 깨우는 푸른 양 한 마리 또 한 마리. 커튼에 불붙은 새벽 푸르게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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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술  1956년 경남 진해 출생. 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의자, 벌레, 달』 『나비의 침대』 『물고기가 온다』 『무기와 악기』 『타르초, 타르초』 등.




『現代文學』 2018년 9월호 88~89.





                                                                                 2018.10.1. 그 양이 사는 산 같았던…




  저 푸른 양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몇 달 전? 몇 년 전?

  티베트?

  하늘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 어디였는데…….

  깎아지른 절벽 틈새 틈새를 찾아 성큼성큼 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그 양은 겨우 발을 디딜 만한 그런 곳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는데, 왜 하필 저 험준한 곳에서 살아갈까 싶었습니다.

  절벽의 다른 곳에는 또 다른 양이 있었습니다.

  양들은 무리 지어 다니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무리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자꾸 생각하면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모습 외에 다른 모습이 끼어들게 되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방 안에서도 그 양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양이 시가 되어 찾아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