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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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TV 토론에 나간 건 직장생활을 할 때 "나가라!" 해서 나간 경우였고 나가고 싶어 나간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 와선 그럴 리 없지만, 만약 그런 토론으로 나라 일을 결정할 것을 전제한다면 결단코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도무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져보면 다른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합니다. 가령 젊을 때보다 행색이 훨씬 더 초라해졌다든지, 그나마 다 버려서 당장 입고 나갈 마땅한 옷도 없다든지, 그런 일에 또 나선 걸 보면 욕을 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든지…….
이런 이유들은 사소한 것들이겠지요. 자신이 없다는 건 심각하고도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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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장면을 보면 당장 자신이 없다는 걸 실감합니다. 우선 숨 쉴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토론이란, 내 생각에 맞춘다면 때로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새겨 듣고 최대한 존중하여 검토하고 내 생각과 비교하는 등 숙고가 필요한데, 상대방 말이 끝나자마자 혹은 끝나기도 전에, 심지어 상대방과 내가 동시에 뭐라고 열띤 주장을 해야 하니, 그렇게 하여 나라 일을 결정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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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은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은 전에 그런 토론에 나갔을 때도 나를 바라보는 사회자의 표정이 때로는 답답하다거나 한심하다는 듯했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내가 혹 '청산유수(靑山流水)'로 무슨 말을 했다면 그건 원고를 작성해서 암기해 두었다가 순전히 쇼(show)를 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쇼를 하는 것은 우선 내 자신이 정말 싫지만 나의 그런 짓을 좋아할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들어앉아 있는 것은, 그러므로 이래저래 참 다행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