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을 하려는데 S가 '판모밀'을 먹어봤냐고 물었습니다. 칼국수는 아니라 해도 짜장면이나 짬뽕, 콩국수 정도에서 벗어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더니 '그럼 그렇지!' 빙그레 웃으며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판모밀이란 것의 '마니아'인 듯해서 '나는 이런 것에조차 뒤졌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근무하는 학교는 그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 중 한 곳에 있었습니다. 판모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르기도 했고, 묘한 음식을 파는 그 일식당이 학교에서 아주 가까워서 그것도 좋았습니다.
#
그가 종업원에게 '호기롭게' 혹은 둘이 왔으니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판모밀 2인분!" 했고 우리가 뭔가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곧 그 판모밀이라는 '물건'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판모밀이구나!'
그건 자그마하지만 제법 높다란 사각의 나무그릇 위에 앙증맞게 자리 잡은 국수 무더기였고 그 옆에는 몇 가지 재료가 담긴 접시가 국물 그릇과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괜히' 머뭇거리며 S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마니아답게 금방 소스를 만들었고 또 금방 그 국수를 말더니 한 손에 받쳐 들고 먹기 시작했는데 나는 좀 얼이 빠져 있다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재빨리 그가 한 일을 상기하며 뒤따라갔지만 그 국수를 금방 다 먹어버린 그는 한동안 나를 기다려주어야 했습니다.
#
아무리 기다려야 했다 해도 그렇지, 나도 금방 끝나버렸고, 우리는 뭔가 허전했고, 떨떠름했고, 싱거운 일을 한 사람들이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다음 일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정리하면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 맛이 좋은 건 분명하다.
* 그렇지만 양이 너무나 적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 이걸 저녁식사라고 사주는 쪽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아무래도 미안하겠지?) 그건 차치하더라도 이걸 저녁식사라고 할 수가 없겠다.
* 식당 측에 이의제기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분명히 "2인분!"을 주문했고 이게 간식(間食)이 아니라면 일본인들은 판모밀을 먹는 경우 이 양으로도 최소한 허기를 면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 ………………
#
누가 먼저였는지 우리는 일어서고 있었고, 그가 계산을 하더니 앞장서서 식당을 나섰고, 그 길로 헤어지는 건 더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 같아서 한동안 말없이 걷고 있었는데 그가 또 '제안'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2차'를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집으로 가세."
나는 이번에도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짬뽕 혹은 짜장면을 시켜서 익숙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고 그제야 만족했으며 "판모밀은 먹을 게 못된다"는 둥 온갖 얘기를 마음껏 털어놓았고 그 모든 얘기에 대체로 공감했습니다.
#
그 판모밀 가게는 제법 고급이어서 판모밀을 2층의 상자에 나누어 내놓았는데 우리는 달랑 윗층의 것만 먹고 1층의 것은 구경도 하지 않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 '판모밀 마니아'를 자처한 S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얘기하며 웃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판모밀" 하면 양이 턱없이 적은 메뉴라는 게 지금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적은데 그 중 반만 먹고 나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 S는 나중에 학생들의 통지표를 컴퓨터로 작성하게 된 '혁신적'인 일에 앞장선 인물이 되었는데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교사들 입장에서는 그게 직접 수기(手記)로 작성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한동안 그를 미워했습니다.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게 마땅하지는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지만, 우리 교육계가 몇 년째 해를 거듭하며 그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에서 전학을 오는 학생들의 성적표를 보면 여전히 교사들의 친필로 작성되고 있었고, (이건 그쪽에선 당연한 일이지만) 교장도 도장 대신 멋지게 사인을 해놓아서 더 친절하고 더 권위 있어 보이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판모밀을 좋아합니다.
문제의 그 판모밀을 먹을 때마다 그 친구를 그리워합니다. 옛일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