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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는 가르치는 일만 해야 한다 (2018.3.19)

by 답설재 2018. 3. 20.

기온이 들쑥날쑥하다. 학생들이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해주어야 하지만 선생님들은 유난히 부담스러운 때가 3월이다. 가르칠 내용이나 맡은 일이 새로우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는 더 그렇다.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옷조차 으스스한 한기를 막아주지 못한다. 자칫하면 병이나 나기 쉽다.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고 무엇보다 수업에 심혈을 기울여 일단 잘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인성지도는 마치 교장 훈화나 생활부장의 업무 처리로 이루어지는 것쯤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담임교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제 자식이 못된 짓을 한 걸 두고 학교를 찾아와 "도대체 뭘 가르쳤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대든 학부모도 있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무슨 부탁이든 간절히 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교사들에겐 수업 외의 업무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이다. 그동안 교사들이 보직을 잘 맡아 왔다면 승진에 필요해서였거나 교장의 간곡한 부탁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처음부터 잘해야 한 해 동안 수월하게 진행될 건 당연해서 3월 초부터 연구와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싶지만 업무가 과중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맡은 일에 소홀한 걸 보고 '처음이라서 그렇겠지' 넘어가 주지도 않는다. '업무'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이어서 "처음부터 왜 그 모양이냐?"고 할 관리자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눈치를 봐가며 수업을 하는 심정일 때도 있다.


가점(加點)을 주고 수업을 줄여줘도 보직을 맡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이 마침내 두드러지고 있을 뿐이다. 만약 승진에 중요한 요소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더 심화될 것이다. 지난 2월에는 교사 보직 문제로 여러 교육청과 학교에서 몸살을 앓았다.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상담, 교육과정 운영을 책임지는 학생부장, 교무부장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어느 지역에선 학생부장에겐 교원평가 최고 등급과 승진 가점을 주겠다고 해도 선뜻 나서는 교사가 없었고, 주당 17시간의 수업을 13~14시간으로 줄여주고 인사고과 S등급에 성과급 차등지급까지 내걸었지만 지원자를 찾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학교별로도 그랬다. 교장, 교감이 적임자에게 애걸복걸 설득한 학교가 많았고 투표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 학생부장 보직을 '반강제'로 떠맡긴 학교도 있었다.


학생부장, 교무부장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아야 하는 보직이어서는 당연히 비교육적이다. 교육청도 변해야 하고 학교도 변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19조)에서 종전과 달리 '학교에는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하여 교사 중 교무(校務)를 분담하는 보직교사를 둘 수 있다'는 규정만 둔 것은 아마도 구체적인 사항은 지역별, 학교별로 자율적, 창의적으로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취지일 것이다. "욜로(You only Live once) 라이프의 확산에 따른 기피"라는 견해를 교사들은 매우 못마땅해 하지만 정작 그렇다면 그 경향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해야 한다.


교사들이 인성교육의 취지를 망각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건 인성교육이 보직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억지주장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직을 외면하면 학원 강사와 다를 게 뭐냐?"고 주장하는 교장도 있다. 반문해보고 싶다. "교사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그 일 외에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성교육도 가르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바뀌어야 하는 건 여러 가지다. 걸핏하면 '사표'부터 생각하는 교사들의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걸핏하면 항의부터 하는 학부모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환경을 개선하고 변화시킬 능력과 권한은 교장에게 있다. 교육 외의 전문적 업무에는 교육청으로부터 추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보직수당, 가산점을 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장, 교감이 관점을 바꾸면 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학교는 오직 가르치는 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