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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대학 가기 좋은 시절(2018.4.16)

by 답설재 2018. 4. 17.

 

2015.11.27. 우리 아파트 게시판의, 괜히, 많이, 고마웠던 홍보물(부분)

 

 

 

1970년대의 어느 봄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쑥스럽고도 감개무량했다.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본 공문 내용을 전했다. "대학 가기도 좋아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자랑스러웠다. 아내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때도 대학진학은 지난하였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심해서 마침내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교육개혁운동 같은 것이 전개되었거나 대입제도 개선방향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그 '선언'은 허사(虛辭)였다. 내가 직접 관여한 양 호언장담한 '청사진'은 흐지부지 되어 12년 후 그 애가 겪은 대입전형 역시 유례없이 치열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지만 '마음껏' 공부하기는커녕 우선 가고 싶은 대학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상처는 중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따라다니는 괴물이 되고 있다.

 

대입전형제도가 또 바뀐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광복 후 9년간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실시하던 것을 바꾸어 1954년부터는 대학입학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하게 되면서부터 대략 4~5년마다 한 번씩은 바꾸었지만 이제 또 바꾸지 않고는 안 될 상황인 것이다.

 

바꾸긴 바꿔야 한다. 바꿀 때마다 문제가 사라지기보다는 손을 대면 댈수록 더 어려워지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세상의 모든 지식을 5지 선다형으로 묶어버리는 수능문제는 주입식 암기교육을 유도하여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부터 부정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이웃 일본은 국어, 수학부터 정답 없는 서술형으로 바꾸고 대학별 시험에도 프레젠테이션, 에세이, 논술을 도입한다는 소식은 우리를 초조하게 한다.


시험 방법도 그렇다. 데일리메일(영)은 시험의 중압감이 나쁘다는 걸 확인하려면 잠시 한국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면서 수능시험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결혼 등 일생을 좌우하는 관문으로서 일시에 수십만 명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해외토픽식' 기사를 썼지만 우리는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을뿐더러 여전히 눈도 깜짝하지 않고 노력만 하면 누구나 고득점자가 되고 “그러면 성공!”이라며 무한경쟁을 시키고 있다.


수시전형에 대한 관점도 불확실하다. 학습과정‧경험을 중시하여 학생들의 개성을 파악하고자 한 취지는 당연히 합리적이건만 전형 분석 전문가가 아니면 사례를 헤아릴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이번엔 "단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다 함께 수능시험을 보고 그 결과로 경쟁하는 것이 아무래도 공정하다는 인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러 동물을 모아 달리기를 시키는 꼴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생각나게 한다.


  대입전형 논의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수능 평가 방식, 정시와 수시의 비중, 선발 시기, 수능의 적용 범위 등이 관심의 초점이긴 하지만 그게 결정되면 우리 교육이 정상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교육을 전체적·집단적으로 보고 싶어 하지만 교육이란 언제나 개별적인 것이다. 대입전형방법에서도 모든 과정을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결정해가는 제도를 창출해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왜 대입전형 전문성을 입시전문학원이 행사해야 하는가? 왜 교사나 학부모가 쩔쩔매는 상황이 연출되는가?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과 희망에 따라 스스로 결정해가는 방법을 찾게 하지 않고 왜 남들이 그걸 결정해주어야 하는가?

 

'진로지도'의 핵심은 당연히 대입전형 탐색 혹은 사회진출이다. 학생이 그것을 스스로 결정해가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그렇게 해야 가고 싶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가능하고 마침내 '대학 가기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 진로지도가 겨우 의사, 가수,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이나 들어보는 수준이라면, 혹은 대학진학이 사교육시장의 전문가에게 묻는 것이 더 실제적일 수 있다면 교육이 얼마나 실없는 것인가. 학생들로서는 얼마나 의아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