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사다리라는 것 (2017.12.18)

by 답설재 2017. 12. 19.

 

 

 

 

 

교육사다리라는 게 뭘까? 어떤 학생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것일까?
신분상승이라고 할 만큼 껑충 뛰어올라도 좋을 출중한 '재능'(새삼스럽지만 '재주와 능력')을 가진 학생? 재능 같은 건 제쳐두고 "하면 된다!" "파이팅!"을 외치며 불철주야 일로매진하는 학생? 혹 아주 특별한 실력, 가령 부모가 가진 권력 혹은 금력, 그런 '실력'을 버젓이 써먹을 수 있는 학생?

모르겠다.
거기에 상당한 철학이 들어 있다면 온갖 경우를 다 이야기하는 건 어렵고 재능을 가진 경우만 이야기하는 게 속 편할 일이다.
그건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다면 그럼 자연스럽지 않은 사다리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다는 걸 털어놓을 수는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사례에는 얼른 박수를 보내기가 싫다는 것, "용은 연이어 나오도록 되어 있고 지금도 여러 가지 용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있다"고 하면 "그것 참 좋다!"고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한 학교, 특별한 학원은 일단 들어가서 꿋꿋하게 견디기만 하면 좋은 사다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주로 기억력에 바탕을 두고 학생들을 뽑아 불철주야, 방학도 없이 붙들어놓고 입시준비를 시키면서 "열심히 가르쳐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게 죄냐!"고 외친 교장도 있었다.
한편 그런 현상을 보고 "교육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며 입시 제도를 고쳤다가 두고두고 희한한 별명(○○○세대)을 달고 다닌 장관도 있었고, "웬만한 능력(대학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받아 잘 가르쳐서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는 것이 좋은 학교 아니냐?"고 외쳤지만 우리 교육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어서, 용감하지만 외로운 대통령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권력과 돈을 가리키는 또 한 가지 '실력'을 공공연히 얘기해서 전통적 의미의 실력만 생각해온 학생들이 "분하다!" "헬 조선!"이라고들 했는데 논리적이지 못해서 그런지 그 주장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분명한 근거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걸핏하면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수준 차는 있지만 방법은 점점 심층적이고 복잡해져서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뒤늦게 알아채게 된다.
부모와 함께 '논문 공저자'가 되어 그 스펙 효과로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경우도 그런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로서 열심히 가르치고 자녀로서 열심히 배웠다는 것을 뭐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부모, 그런 자녀가 되지 못한 입장에선 그 해명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뭔가 억울하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확실하다.

대학 측에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다. 조건이 좋은 학생들만 선발되어 계층 간 이동의 어려움이 심화된다고 하면 총장이 나서서 특정 계층, 특정 지역 학생을 몇 명 선발해주겠다는 '특혜'를 베푸는 경우다.
그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생색을 내거나 "저 학생을 보라!"고 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특례를 마련해나가면 행정이나 제도는 자꾸만 복잡하게 되고, 심지어 그런 분야의 전문가가 생겨 활개를 치게 된다.
결국 보통사람은 뭐가 뭔지도 모를 것이 당연하고, 그새 운 좋은 학생 몇 명이 그야말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용이 되는 기회를 갖게 될 뿐이다. 이것이 저 '사다리'라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기회는 재능과 의지, 정진을 구비한 경우에 절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베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전면에 나서서 이 사회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는 꼴이다.
올라갈 만한 학생들이 올라가게 해주면 될 걸 가지고 개천에 용 나듯 오르는 사다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예 그 희한한 사다리 마련이 불가능한 교육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교육행정이 할 일이 없고 재미가 없겠지?

핀란드 얘기가 지속적으로 회자된다. 그 나라 얘기를 들어보면 모든 게 덜 복잡한 것 같고 자연스럽다. 먼 나라 얘기인데도 '그렇겠지!' '그래야 하지!' 수긍하게 된다.